‘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한때 꽤나 유행했던 노래의 가사이다. 처음엔 재미있네 싶었다가, 다음엔 이게 무슨 말? 싶었고, 다음엔 쓸데없는 궁금함이 도져 찬찬히 뜯어봤다.
내 것이 맞는지 아닌지, 니 것이 맞는지 아닌지 모호한 관계를 노래한 것이었다. 모호함이라! 뭐라고 딱 규정되지 않은 이런 거 정말 싫은데, 그러나.
세상엔 모호함이 너무 많다. 우리의 삶도 그 모호함의 연속일 테고, 그 삶을 구성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모호함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호함을 싫어하는 내 삶도 들여다보면 꽤나 많은 모호함이 똬리를 틀고 있을 거다. 틀림없이.
매월 한 번은 만나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있다. 대화가 매끄럽게 진행되고, 대화 속에 묻어나는 생각도 많은 부분 일치한다. 친구 같다. 15년쯤은 가볍게 뛰어넘는다. 그래서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고 유쾌하다.
다른 형태의 만남이다. 어느덧 자리에서 제일 연장자일 때가 많아졌다. 지금의 자리가 그렇다. 구성원들과 나이 차이가 10년 이상 나고, 그중엔 내가 주례를 선 친구도 있으니 나이 차이가 꽤 크다. 이런 모임에선 꼰대스러운 연장자가 되지 않으려 애쓴다. 본능적으로.
전자는 친구인 듯 친구 아닌 친구 같은 어른과의 만남이고, 후자는 친구인 듯 친구 아닌 친구 같은 젊은이들과의 만남이다. 모호한 관계이다.
살면서 형성되는 관계는 대부분 명확하다.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 같은 핏줄의 명확함부터, 친구, 동료, 선후배, 상사, 구매자와 판매자, 많기도 많은 갑과 을 등으로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고, 이런 명확한 관계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근간이 된다. 하지만.
이런 명확한 관계로만 사회가 형성된다면 너무 딱딱하고 삭막하지 않을까? 때로는 뭐라고 규정되지 않은 모호한 관계가 주는 약간의 혼란과 그 혼란이 주는 흐트러짐의 편안함도 필요치 않을까 싶다.
명확함은 명확함 답게 명확하게 좋은 것이지만, 왠지 모를 차가움이 느껴지고, 모호함은 모호함 답게 모호한 편안함이 느껴지니 말이다.
명확한 관계든 모호한 관계든 좋은 관계를 위해서 필요한 건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과 상대방의 장점을 보려 하고 칭찬할 줄 아는 마음의 넓이 아닐까?
‘그 사람 노래는 잘해.’ ‘그 사람 돈은 많아.’ 같은 식의 칭찬인 듯 칭찬 아닌 살짝은 비난의 기운도 느껴지는 말은 하지 말고, 진심을 담은 진짜 칭찬과 진짜 배려를 하는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