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의 추억

by 김종열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온 아내의 손에 쇼핑백이 들려 있다. 내려놓기가 무섭게 두유(반려견)가 달려가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팽하고 발길을 돌려버린다. 대부분은 먹을 거여서 그 앞을 떠나지 않는데 먹을 건 아닌가 보다. 들여다보니 좋은 향기를 내는 디퓨져가 들어있다. 웬 거냐니까 선물 받은 거란다.


사회생활을 너무 잘하는 거 아닌가? 어쩌고 하면서 포장을 뜯고 적당한 공간에 놓는다. 달콤한듯하기도 하고 은은한, 그리고 익숙하기도 한 향이 그동안 방안을 차지하고 있던 생활의 냄새를 밀어내버리고, 금방 그 자리를 채운다. 좋은 느낌이다.


좋은 느낌이라?


문득 척 맨지오니의 Feel So Good이 떠오른다. 멜로디를 흥얼거려 본다. 제목만큼이나 느낌이 좋고 감미로운 곡이라 자주 듣는 곡인데, 좋은 날, 또는 좋은 기분일 때마다 생각나는 음악이다. 향기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느낌을 관장하는 다섯 가지 감각 중 향기의 감각은 보거나 듣는 것처럼 명확하지 않고, 뭐라고 딱 규정지을 수 없는 모호함을 가진 것 같다. 그래서일까? 향기의 기억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끈질김과 아련함을 갖고 있다.


두껍고 투박한 무쇠솥에 쌀을 씻어 안치고 불을 지핀다. 불은 쉴 새 없이 제 모습을 바꾸며 타올라 아궁이로 쑥쑥 빨려 들어간다. 아궁이 앞은 타닥타닥 잔가지 타는 소리와, 매캐한 냄새와 따뜻함이 있어 아늑하다. 이윽고 무거운 솥뚜껑 사이를 비집고 뜨거운 수증기와 밥물이 흘러나오면 잔불로 뜸을 들인다. 그런 다음, 드디어 솥뚜껑을 스르릉 열면 확 끼쳐오는 구수한 밥 냄새.

끈질기고 아련한 기억이다.


끈질기고 아련한 기억은 또 있다.

찬 바람 부는 소리 쌩쌩 들리는 겨울밤, 서로 당겨 덮던 두꺼운 이불에 밴 가족들의 체취와 먼지를 머금고 있는 듯한 냄새.

봄이면 머리를 어지럽히던 아카시아 꽃향기 – 그 많던 아카시아는 다 어디로 갔을꼬? - 와 그 향기를 담아 팔았던 아카시아 껌의 향기.

사춘기를 지배했던 꽃 편지지의 향기와 어린 소녀들의 미숙한 화장품 향기까지 향기의 추억은 기분 좋은 아련함으로 남아 있다.


깊게 숨을 들여 마셔본다. 새로 방 안의 공기를 지배하게 된 디퓨져의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이제 방안의 이 향기도 추억하는 향기처럼 그렇게 좋은 느낌으로 기억의 한편을 점령하려나?


로버트 리드-플뢰르 드 리스#.png 로버트 리드-플뢰르 드 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