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라 먹는 재미? 아니, 골라 듣는 재미(1)

by 김종열

살다 보면 뭔가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갑자기 운전해서 낯선 곳에 가고 싶다거나, 오래된 영화 한 편이 보고 싶다거나, 누군가에게 전화해서 떠들고 싶다거나, 술을 한잔하고 싶다거나, 물이 보이는 곳으로 산책하러 나가고 싶다거나, 밥이 먹고 싶다거나, 이건 배가 고파서인가?

어쨌든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 시간이 길어진다 싶으면 나타나는 현상들인데, 그중 비교적 자주 하고 싶어지는 것이 있었으니…

좋아하는 노래 골라 듣기이다.


그다지 많진 않지만, 방 한편에 나란히 꽂혀있는 CD와 LP 앞에 선다. 뭐 나름 정리는 잘되어 있는 편이다. 혼자 생각인가? 오늘따라 땡기는(?) 곡들이 담긴 음반들을 뽑아낸다. ‘역시나’다. 손길은 비교적 자주 들었던, 좋아하는 곡들만 귀신같이 골라낸다.


첫 곡은 또 ‘Hotel California’다. 이건 도대체 몇 번을 들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많이 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아직도 질리질 않는다.


거의 30~40년 전쯤으로 기억되는데 레코드 가게에서 정품 LP와 해적판 LP와의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가벼운 주머니가 이끄는 대로 해적판을 구입했었다. 해적판답게 찍찍거리는 잡음이 많았고 음질도 당연히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가장 자주 손이 가는 음반이 되었다.


몇 년 전쯤인가 그날도 이곡을 듣고 있었는데 불현듯 어딘가에서 정품 LP를 팔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스마트한 세상이 좋긴 좋은 거다. 검색 몇 번 만에 재고품인지 새로 만든 건지는 몰라도 새 LP를 손에 넣게 되었으니 말이다.


멜로디가 좋아서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어쿠스틱 기타 소리와 일렉트릭 기타 소리가 어우러지는 것도 좋고, 노래 부르느라 바빠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리더싱어가 연주하는 과하지 않은 드럼도 좋다. 무엇보다 좋은 건 마지막에 연주하는 기타의 선율이다. 성향이 그런 건지 어딘가가 모자라서 그런 건지 들어도, 들어도 질리질 않으니…


핑크 플로이드의 더블 재킷 앨범인 The Wall도 해적판이다. 이상하게도 애정하는 LP는 해적판이고, 큰마음먹고 구입한 정품 LP 들은 뒷전이니, 이것도 머피의 법칙에 해당하는 것이려나?

이 앨범 전체에서 풍기는 약간 전위적인 느낌이 좋아서 가끔은 전곡을 다 듣는 이상한 짓도 하지만, 자주 챙겨 듣는 곡은 ‘Another Brick In The Wall’이다.


같은 제목의 곡을 파트 1,2,3으로 편성했는데, 누가 들어도 핑크 플로이드네 할 것 같은 파트 1과, 아이들 합창이 인상적인 파트 2와, 뭔가를 부수는 소리로 시작해서 다소 격앙되게 표현한 파트 3이 같은 듯 다른 느낌이어서, LP로도 듣고, CD로도 듣고, 모바일 동영상으로도 보고 듣고 한다.

근데 이 양반들은 왜 파트 1,2,3을 나란히 놓지 않고 여기저기 흩어 놓았는지 모르겠다. 불편하게 시리.

윤시내의 ‘열애’를 꺼내 든다. ‘우우우’하는 허밍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내레이션, 그리고 열창한다. 어라, 딸랑 1절로 끝이다. 아쉬움이 남는다. 한 번 더 듣는다. 노래가 짧은 이유가 이거였을까? 한 번 더 듣게 하는.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를 섞어놓은 듯한 음성과, 쥐어짜는 듯한 창법 - 이런 걸 호소력 있다고 하던가? - 이 매력적인 것 같다. 당연히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젊었을 때 조용필을 참 좋아한 것 같은데 음반은 딸랑 한 장뿐이다. 그런 걸 보면 좋아한 건 아니고 좋아한다고 착각한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음반이 한 장 밖에 없으니 애정하는 곡도 당연히 그 음반에 있는 곡이다. ‘물망초’라는 곡인데, 기억으로는 1등을 한 적도 없고, 가수 본인도 콘서트에서도 잘 부르지 않는 살짝은 잊힌 곡 같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기회만 되면 듣고, 누가 LP를 들려달라면 듣고, 음질 테스트할 때도 듣고 그런다. 그래서 골라 들을 때 또 듣는다. 왜 골라 먹는 아이스크림 살 때 매번 사던 걸 사지 않는가? 그런 거다. 나만 그런 거?


르누아르-피아노 치는 소녀#.jpg 르누아르-피아노 치는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