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 이성적. 감성적!

by 김종열

#1 어딜 가려고 집을 나선다. 주차장에서 차를 찾는다. 시간도 급하고 마음도 급한데, 이런! 차 앞을 다른 차가 떡하니 막고 서있다. 감정적인 사람은 영어부터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IC'


이성적인 사람은 사이드 브레이크가 풀려 있는지 확인하고, 전화번호가 놓여 있는지 살펴보고, 이도 저도 아니면 경비실로 향한다. 몇 호의 차인지 확인하러.




#2 TV를 바꿔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전자제품 상가를 찾아간다. 판매하시는 분이 새로 나온 제품은 이것이고, 이런저런 기능이 좋다고 설명한다. 좋아 보인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제품을 구매한다. 감정에 충실한 구매자다.


매장을 찬찬히 둘러본다. 집 크기에 알맞은 사이즈를 결정한다. 같은 사이즈 제품들의 가격을 비교한다. 판매자에게 각 제품 장단점의 설명을 듣는다. 그런 다음 구매할 제품을 결정한다. 매우 이성적인 구매자다.



#3 주가가 오른다고 연일 보도되고 있다. 이럴 때 주식시장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인에게 조언을 구한다. 이런 장엔 뭘 사더라도 오른단다. 이름이 그럴듯한 회사의 주식을 산다. 물론 뭘 하는 회사인지 그런 건 모른다. 주식을 사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느낌이어서 행한 감정적인, 그리고 무모한 경제활동이다.


주가가 오르는 원인이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 때문인지, 본격적인 경기 회복인지를 파악한다. 이런 장엔 어떤 주식이 유망한 지 알아보고, 그 업종의 회사 중 우량한 회사를 선택한다. 재무 현황과 장래성 등을 살펴보고 투자한다. 이성적인, 그리고 합리적인 경제활동이다.




#4 술자리에서 하지 않아야 할 주제가 대화거리가 된다. 정치 이야기이다. 다들 취했나 보다. 또 영어가 출동한다. “AC 그 사람은 안 되겠더라. 그렇게 주변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야, 그리고 그 사람도 안 되겠더라. 무슨 말을 그렇게 해서는……” 맥락? 그런 거 없다. 감정이 앞선다.


“정치 이야기 그만하고 집에 가자.”라며 자리를 파하게 하고 일어선다. 아주, 매우, 상당히 이성적이다.




#5 편한 사람들과 어울려 카페에 들어선다. 일행 중 한 분이 인테리어가 너무 예쁘다며 감탄한다. 둘러본다. 테이블이나 의자도 우아하고 장식용 소품도 잘 어울리고 깔끔하다.


주문한 차를 가져온다. 커피 향이 참 좋다. 또 그분이 커피 향이 너무 좋다고 감탄한다. 감탄하기엔 또 늦었구나.라는 생각과 참 감성적인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6 멀리 않은 곳에 코스모스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연가 길이 있다고 해서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강 둔치에 버려진 땅을 활용하여 아주 예쁜 코스모스 길이 만들어져 있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강둑의 선과, 멀리 보이는 푸른 강물과, 많은 사람이 수고했을 바람개비와 그 바람개비를 돌게 하는 바람과 그 바람에 한들거리는 각색의 코스모스가 정말 예쁘다. 아내는 ‘예쁘다’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고, 웃고, 즐거워한다. 감성이라는 게 폭발한 것 같다.




나는 감정적인 사람일까? 이성적인 사람일까? 감성적인 사람일까? 감정적인 게 좋은 걸까? 이성적인 게 좋은 걸까? 감성적인 게 좋은 걸까?

답이 있을 리 없다. 꼭 집어서 어떤 것이 좋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복합적이기 그지없는 사람을 ○○적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우니 말이다.

그러나 주변 사람이 불안을 느낄 정도로 너무 감정적이지 않았으면 좋겠고, 역시 주변 사람들이 볼 때 재수 없고 차갑게 느껴지는 너무 이성적인 사람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좋은 것을 좋아할 줄 알고, 예쁜 것을 예뻐할 줄 아는 감성적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너무 호들갑스럽지 않은 그런.


김현곤-살며시#.bmp 김현곤-살며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