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마지막 편지, 엄마의 긴 여정
마침내 대전에 닿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역을 나서는 순간, 길은 다시 막막하게 펼쳐졌다.
어디서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 몰라 두리번거리는 소년에게
비슷한 또래가 다가와 슬며시 속삭였다.
“너, 몰래 탔지? 개구멍 있는 데 아는데… 나랑 가자.”
덫 같은 유혹이었다.
순간, 마음이 흔들렸지만 본능적으로 ‘아니다’ 싶었다.
소년은 고개를 저으며 사람들을 따라 발길을 옮겼다.
읍내 가는 길을 묻고 또 물어,
막차 출발 직전에야 정류장에 닿았다.
남은 60원을 꼭 쥔 채,
피곤해 보이는 차장 누나에게 조심스레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한동안 소년을 바라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밤 11시, 읍내에 닿았지만
집까지는 여전히 한 시간을 걸어야 했다.
불빛 하나 없는 산길은
짙은 먹물처럼 깜깜했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림자가
기괴한 형상으로 다가왔다.
소년은 떨어진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노래를 부르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두려움을 몰아냈다.
자정 무렵, 싸리문 안으로 스친 엄마 얼굴.
그 얼굴을 보는 순간
하루 종일 쌓였던 두려움과 고단함이
한꺼번에 씻겨 내려갔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밤새 한숨조차 쉬지 못한 엄마는
잠든 아들의 얼굴 앞에서 몇 번이나 주저앉았다.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이성처럼 속삭였지만
차마 그럴 수 없다는 모정이 가슴을 붙들었다.
그 갈등 속에서 밤은 끝없이 길어졌다.
그리고 끝내 결정을 내렸다.
아들을… 다시 그곳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그의 탈출은 단 하루의 기적에 불과했다.
소년은 다시 1년 반을 버텼다.
영양실조는 더 깊어지고 온몸엔 옴병이 퍼졌다.
버짐으로 얼룩진 얼굴엔 종기까지 돋아나 커져 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마침내 학교 선생님마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결국 그는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엄마, 제발 데리러 와 주세요.
너무 힘들고, 아프고, 무서워요.
하루하루가 너무 길고 무섭기만 해요.”
편지를 받은 엄마는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그리고 불편한 다리를 지팡이 두 개에 의지한 채
두 시간 산길을 넘어 입석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새벽에 집을 나서야 한밤에 닿는 길.
하루 종일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어린 아들을 살리러 가는 그 길에서
엄마는 단 한 번도 편히 앉아 쉴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엄마와 함께 다시 시골로 내려갔다.
연기 피어오르는 부엌, 따끈한 밥 냄새,
손끝이 닿을 때마다 전해지던 엄마의 온기….
그 모든 것이 서서히 그의 몸과 마음을 살려냈다.
영양실조는 나았지만
잃어버린 체력은 중학교 내내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쑥쑥 자랄 때,
그는 늘 한발 늦게 따라가야 했다.
훗날 그는 알았다.
그날의 굶주림과 추위, 두려움 속에서
자신이 배운 건 용기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정직을 잃는 순간 길도, 사람도, 꿈도
한꺼번에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대가는 몸과 마음으로 오래도록 치러야 한다는 것도.
그날 마음 깊이 새겨진 정직과 용기의 나침반.
그 바늘은 평생 동안 그의 히치하이킹 인생 길 위에서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그를 이끌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