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산골 소년의 다락방 탈출
그는 원래 운동 잘하고 기운 넘치는 아이였다.
조그만 산골에서 논밭과 산속을 뛰어다니며 자존심 하나로 버티던 소년.
초등학교 5학년 중반, 서울 근교 친척 집으로 보내진 순간부터 그의 삶은 서서히 꺾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말, 마침내 영양실조가 그를 덮쳤다.
매일 변함없는 한두 가지 반찬, 양마저 부족한 밥상.
얼굴엔 버짐이 피고, 온몸엔 옴병이 퍼졌다.
거울 속 얼굴은 조금씩 낯설게 변해갔다.
그래도 그는 애써 웃었다. 스스로 잘 버티고 있다고 믿었다.
그땐 몰랐다. 그 선택이 아이 하나를 흔들고, 다치게 하고, 끝내 살아남게 만들 줄은.
도시의 불빛은 시골 소년의 눈에 너무도 화려했다.
오락실의 소음, 번쩍이는 간판, 낯선 과일과 군것질….
처음엔 친척들이 건네 준 용돈으로 작은 호기심만 채웠다.
그러다 어느 날, 집 안 돼지저금통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작은 동전 하나를 꺼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처음엔 들킬까 봐 두려웠지만, 몇 번 무사하자 그 두려움은 점점 무뎌 졌다.
반복된 순간들이 습관이 되었고, 결국 발각됐다.
소년은 조그만 창 하나만 달린 다락방으로 쫓겨났다.
쾌쾌한 곰팡이 냄새와 싸늘한 바람이 스며드는 어둠 속에서 지냈다.
배고픔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차가운 바람이 스며드는 밤이면 눈을 감을 때마다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느 날 결심했다.
“엄마가 있는 시골로 돌아가자.”
설 전날 아침, 모아둔 200원을 손에 쥐고 등교길을 벗어났다.
상경하던 기억을 더듬어 영등포역을 향했지만 길은 낯설고 모든 게 불확실했다.
기차역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고, 급한 마음에 엉뚱한 곳에서 내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아직 멀었다며 버스를 타라고 했지만,
토큰 하나를 이미 써버린 소년에게 남은 건 130원뿐이었다.
그는 돈을 아끼고 걷기로 했다.
점심 무렵, 영등포역에 닿았으나 기차는 그곳에 서지 않았다.
앞이 캄캄해 지고 가슴이 털썩 내려앉았다.
누군가가 서울역에 가면 기차가 간다고 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버스에 올랐다.
창밖으로 스친 한강철교.
순간, 기차가 저 다리를 건넌다는 말이 떠올랐다.
버스가 다른 길로 꺾이자 소년은 황급히 내렸다.
알고 보니 또 잘못 내린 것이었다.
서울역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고 했다.
주머니엔 이제 60원만 남았다.
걸어가는 길 밖에 없었다.
거리마다 보이는 먹거리를 애써 외면하며 뛰다 걷다를 반복했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배에서는 소리가 났지만 멈출 수 없었다.
해가 기울 무렵, 마침내 서울역이 눈앞에 나타났다.
발 디딜 틈 없는 대합실. 표 한 장 없는 소년.
한참을 망설이다가 어른들 뒤에 몸을 숨기고 개찰구로 향했다.
잡히면 끝이었다.
소년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는데,
꽉 메어진 인파는 슬로모션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숨 막히는 시간이 흐른 뒤 에야 그는 입석 승객으로 가득 찬 기차에 몸을 실었다.
차장이 나타날 때마다 화장실로 달려가 몸을 숨겼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숨소리마저 들킬까 봐 가슴이 쿵쾅거렸다.
덜커덩거리는 문틈 사이로 스며드는 냄새와 진동이 온몸을 감쌌다.
‘혹시 잘못 탄 건 아닐까. 대전에 정말 서긴 하는 걸까….’
불안과 두려움 속에 몇 시간을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