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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콩달 Dec 04. 2023

난자채취

#1-6_난임 극복기

  "난포가 보이죠? 하나, 둘, 셋...... 여기는 아직 덜 자랐고. 이제 이틀 후에 난자채취 할게요. 오늘 밤에 난포 터지는 주사 놓고 수요일 오세요." 

  초음파를 보고 의사 선생님께서 난자를 채취한다고 말씀하셨다. 난포가 많지는 않아 채취되는 난자 수가 적을 거로 예상되는 가운데 '배상생성 등에 관한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저녁에 퇴근한 J와 함께 '난자채취 주의사항'을 함께 읽어 내려갔다. 


  1. 난자채취 3일 전부터 금욕하세요. (부부관계 및 사정)

  2. 채취 전 무리한 운동금지 (난포가 미리 터질 수 있어요)

  3. 채취 당일부터 금식(물, 커피 포함)합니다. 

  4. 채취 당일은 절대 운전하지 마세요.

  5. 남편과 동행하여 아침 8시 30분까지 병원으로 오세요.

                                   .

                                   .

                                   .

  

  "수요일 휴가 냈어" 

  함께 주의사항을 읽다 남편과 동행하라는 문구에 J가 '나 잘했지?' 표정으로 말한다. 

  "응응, 잘했어. 그리고 이거 2번 봤지? 이래서 내가 운동을 안 한 거야."

  "핑계는. 엄청 귀찮아했으면서. 공식적으로 운동하지 말라니까 좋구나."

  평소 운동을 좋아했었는데 이상하게도  난임시술이 시작되면서부터 운동을 뚝 끊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J 말처럼 귀찮아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침에 주사를 맞고 나면 이상하게 누워만 있고 싶어졌다. 흔히들 하는 말처럼 누워있지만 더 가열하게 누워있고 싶었다. 그로 인해 한 달 동안 살도 2kg나 졌다. 운동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는지 '운동금지'라는 말이 너무나 반가웠고 나의 게으름이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에 조금은 당당해졌다. 주의사항을 다 읽고 밤 10시. 난포 터지는 주사 [오비드렐]를 배에 주사하고 항생제 질정을 삽입했다. 단지 이것만 했을 뿐인데 왜 이리 비장해지는지. 남들이 보면 올림픽 결승전에라도 나가는 줄 알겠다. 

  난자채취가 있는 날. 아침부터 서둘렀다. 8시 30분까지 내원하라고 했는데 그 밑에 '정해진 시간을 어길 시, 채취실패 할 수 있어요!'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물도 먹지 말라하여 입이 바짝 마른 채 병원으로 향했다.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는데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다. 다들 남편과 함께 온 것을 보면 대부분 난자채취를 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접수를 하고 앉아 있는데 J가 먼저 대기실을 떠났고 나 역시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간호사가 링거를 꽂아주고 잠시 기다리라 하여 가만히 누워있는데 괜히 긴장이 되었다. 

 긴장감을 떨치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안으로 들어가실게요."라는 간호사의 말에 엉거주춤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 처치실은 넓은 방 한가운데 산부인과용 침대가 있고 주위에 여러 기계들이 있었다. 수술실 같은 삭막함과 차가움이 느껴져 더 긴장되고 위축되었다. 침대에 눕자 간호사들이 무언가를 내 몸에 연결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금방 끝날 거예요. 걱정하지 말고 한숨 푹 주무세요."라는 말에 "네."하고 대답한 후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회복실 침대 위였고 나를 어떻게 옮겼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괜찮으세요?"라며 간호사가 다가왔다.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엉덩이에 주사를 맞고 잠시 쉬다 밖으로 나왔다. 일찍 본인의 임무를 다한 J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의 부축을 받으며 수납을 하러 갔다. 

  "몇 개 채취되었나요?"

  아직도 정신이 몽롱한 나를 대신해 J가 물었다. 간호사가 차트를 가만히 살펴보더니

  "3개 채취되셨네요. 자세한 사항은 배아이식 때 설명해 주실 거예요. 잠시 앉아 계시면 주의사항 말씀드릴게요."

 '3개.' 다른 사람들은 10개가 넘게 채취되던데 3개라니. 역시 나이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간호사가 주의사항과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설명을 하는 동안에도 '3개'라는 단어는 내 머릿속을 빙빙 돌아다녔다. 

  "1일 2회 크리논겔 질정 넣는 거 잊지 마시고요. 난자 채취 후에 복수가 차거나 배가 빵빵해질 수 있으세요. 불편하시면 이온음료를 드시면 되세요. 배아이식 때 뵐게요." 

  간호사의 설명을 끝으로 크리논겔과 주의사항이 적힌 종이를 들고 병원을 나섰다. 

  "3개밖에 채취가 안돼서 아쉽네. 동결은 안될 거 같다."라며 J가 아쉬워한다. 

  "그러게. 카페 글 보면 10개 넘게 채취되는 사람들 많던데. 40대라 그런가 봐. 어쩔 수 없지 뭐." 

  이번에도 나이가 나를 죄인으로 만든다. 

  그래도 고생했다며 집으로 가는 길에 맥도날드로 방향을 트는 J가 함께여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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