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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콩달 Dec 13. 2023

배아이식

#1-8_난임 극복기

  배아이식의 날이 다가왔다. 오늘은 10시까지 내원. 마취를 하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주의사항은 없었다. 난자채취를 한 날처럼 옷을 갈아입고 잠시 기다리다 호명이 되어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눕자 배아수정을 담당해 주시는 연구사님이 오셔서 그동안의 진행 상항을 설명해 주셨다. 

  "난자가 3개 채취되셨는데 1개가 성숙, 2개가 미성숙이었어요. 3개다 수정을 시도했는데 하나는 자라지 않아서 폐기했고요. 2개는 세포분열이 잘 일어나서 오늘은 2개 배아 삽입하도록 할게요. "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물론 중간중간 뭔가 더 의학적인 설명이 있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생소하기도 했고 처음이라 긴장을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명을 듣는 사이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차트를 보시더니 

  "난자가 A급이 안 나왔네요. B급이긴 한데 지금 나이에서 나쁜 편은 아니에요. 오늘 배아 2개 이식할게요. 환자분께 좋은 결과 있으라고 함께 기도할까요?"라며 기도문을 머리맡에서 읊어주셨다. 종교가 없지만 기도문 때문인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B급이라니. 하~ 정말 쉬운 게 없구나. 

  "왼쪽 초음파 모니터 보이죠? 이 자리에 배아를 이식할 거예요. 아마 반짝하는 것처럼 하얀 게 보일 거예요. 잘 보세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데 뭔가 하얀 것이 보이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봤어요?"

  "네, 뭔가 하얀 게 보였어요."

  "그게 배아가 이식된 거예요. 이제 배아가 자리를 잘 잡을 수 있게 가만히 앉아서 쉬세요. 배에 힘주거나 고개 들지 말고요."

  순식간에 배아이식은 끝났고 잠시 5분 동안 가만히 누워있었다. 잠시 후 회복실로 자리를 옮기는데 비어있는 침대가 이동식 침대밖에 없었다. 간호사는 이동식 침대에 누우라고 했고, 이동식 침대는 높이가 높아 침대에 눕기 위해서는 배에 힘을 주며 올라갔야 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이동식 침대에 올라가 누웠는데 생각하다 보니 왠지 속상했다. 배에 힘주지 말고 있으라고 했는데 높은 침대에 올라가라고 한 간호사가 원망스러웠고, 다른 침대에 눕겠다고 말하지 못한 내가 바보 같아 괜스레 화가 났다. 그러면서 점점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B급이라는 이야기, 폐기되었다는 이야기, 배에 힘을 주고 만 그 순간 등등. 마음이 싱숭생숭 기분이 이상해져 왔다. 

  30분쯤 누워있었나? 주사를 맞고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J가 다가와 부축했다. 

  "크리논겔 잘 놓고 계시죠? 오늘은 먹는 약 처방될 거예요.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2번 드세요. 주사 맞는 날 기억하고 계시죠? 편하신 시간에 오셔서 주사 맞으면 되세요."라는 간호사 설명을 듣고, 결재를 하고 병원을 나섰다. 크리논겔과 주사. 앞으로 나를 괴롭힐 녀석들이다. 물론 이 순간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되어 있는 차로 향하는데 나도 모르게 양손을 아랫배에 갖다 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J가 웃으며 "어머~ 여기 우리 배아가 들어가 있군요. 안전하게 보호해 주세요."하고 농담을 건네면서도 그럴 필요까지 있냐라며 핀잔을 줬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가네. 근데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될놈될이야"

  '될놈될.' J가 자주 하는 말. 너무 기대하지 말고,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였지만 왠지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 남자는 임신을 하는 데 있어 조심할 것이 1도 없는 것 같아 억울함마저 들었다. 순간 욱하는 마음에 서운함을 이야기할까 하다가 T성향의 남자인 것을 알기에 속으로 삭였다. 이것 때문에 얼마나 자주 싸웠던가. 오늘은 배아를 이식한 날이기도 하니 싸우고 싶지 않아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아랫배 위에 손을 얹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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