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지없이 알람이 울린다. 아침, 저녁으로 크리논겔을 넣으라는 잔소리의 알람. 너무나도 싫은 것을 참고 크리논겔을 집어 들었다. 아침, 저녁으로 시간 맞춰 뭔가 한다는 것도 힘들었지만 크리논겔을 넣고 나면 생기는 증상들이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넣을 때마다 속이 좋지 않았고, 계속 나오는 찌꺼기를 볼 때면 순간순간 불쾌해졌기 때문이다.
이틀에 한 번씩 맞는 주사도 곤혹이었다. 어릴 적 화상을 크게 입은 적이 있었는데, 약 한 달간 매일 내원하며 엉덩이 주사를 맞은 후부터는 주사만 맞으면 멍이 들고 멍울이 생겼다. 엉덩이가 더 이상의 주사는 싫다며 항변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 이후 주사를 맞을 때면 "힘 빼세요. 주사 안 들어가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분명 힘을 빼고 있는데도 말이다. 분명 엉덩이 스스로가 주사 맞기 싫다고 잔뜩 화를 내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엉덩이 주사는 피해왔는데 난임치료를 시작하자 다시 엉덩이 주사가 시작되었다. 이건 피할 수 없으니 다시 주사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크리논겔과 주사 일정이 담긴 설명서
이번에도 역시나 멍과 멍울이 생겼고 J에게 아프다고 주물러달라 하자 대충 몇 번 문지르고 "괜찮아질 거야"하고 만다. 어릴 적 엄마가 온 힘을 다해 엉덩이를 주물러 주셨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성의가 없어 보였다. 또 서운함이 밀려왔다.
"좀 성의껏, 정성껏 문질러주면 안 돼?"
"주물러도 크게 좋아지지 않을걸?"
하면서도 다시 문질러주기 시작했다. 뽀로통해진 나는 그래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기분이 수시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예민해진다던데 그 영향일까? J의 행동과 말에 서움함을 자주 느끼기 시작했다. 난임치료를 받으면서 몸과 마음이 힘든 것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더욱 그랬다. 서운함을 내비치면 별것도 아닌 것에 까칠하게 군다며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는 J의 태도에 자주 싸우기도 했다. 눈물도 많아져서 싸우다 보면 펑펑 울게 되고, 그런 나를 달래주며 싸움은 끝이 나지만 서운함은 가슴에 쌓여만 갔다.
다음 날,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가야 했다. 혹시나 착상에 피해가 갈까 운동도 하지 않고 집콕 생활을 하던 생활을 반성하며 병원까지 걸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도앱에서 검색해 보니 도보 35분. 왕복 70분이면 운동이 되겠다 싶어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익숙한 길을 걸으면 기분 좋게 걸어가고 있었는데 오르막길을 계속 오르다 보니 점점 힘이 들기 시작했다.
'하, 체력이 정말 많이 떨어졌구나. 이만한 오르막도 쉽게 오르지 못하다니.'
스스로를 책망하면서 택시를 타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어찌어찌 힘을 내며 도착한 병원. 침대에 누우며 "오른쪽에 놔주세요."라고 간호사에게 부탁을 했다. 내 엉덩이 상태를 본 간호사가 "아고, 멍드셨네요. 어째." 하며 안쓰러운 듯 주사를 넣고 여러 번 문질러주셨다. J보다 훨씬 정성스럽게. 어제의 J가 또 미워진다.
빵집 앞에서 기념샷
병원을 나서며 고생하는 나를 위해 뭔가 맛있는 걸 사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병원은 맛집과 카페가 많은 동네에 위치해 있어 걸어서도 충분히 갈 수 있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예전에 줄 서서 샀던 소금빵이 생각이 나 빵집으로 향했다. 줄이 길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손님이 얼마 없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가장 유명한 소금빵과 무화과가 들어간 빵을 사고 나서는데 기분이 한없이 좋아졌다. 호르몬의 영향이 분명하다. 이렇게 기분이 들쑥날쑥하다니. 기분이 좋아졌으니 이번에도 걸어서 집으로 가기로 했다. 운동량도 채우고 햇살도 느낄 겸. 꽃망울이 올라오기 시작한 3월의 봄을 만끽하며 아랫배에 손을 살짝이 갖다 된다. 배아가 그곳에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