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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콩달 Jan 10. 2024

벚꽃축제

#1-10_난임 극복기

   배아이식을 하고 나서 거의 집에만 있었다. 배아가 착상되고 잘 자라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병원에서는 심한 운동과 배에 힘을 주는 행동을 제외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인터넷에서는 항상 조심하고 누워있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많았다. 정답은 결국 없는 것인가? 그래서 결국 나는 조심하는 것을 택했다. 나이도 있고, 조심했다고 나쁠 것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일상생활 대부분을 조심한다는 것은 상당히 신경이 많이 쓰였다. 특히 배에 힘을 주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게 가장 어려웠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대부분 배에 힘을 주는 행동을 많이 한다. 의자에 앉았다 일어날 때도,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하물며 화장실에 갈 때도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내 생활은 코미디의 연속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울 때도 허리를 굽히지 않기 위해 무릎을 굽혀 줍고,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는 것도 조심스러워 J가 집에 있을 때만 세탁기를 돌렸다. 화장실에서도 최대한 힘을 안 주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노력을 했고, 의자에서 일어날 때도 손으로 의자를 짚으면서 일어났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J는 종종 폭소를 터트렸다. 

  "그렇게까지 힘쓰면 안 되는 거야? 하하하. 아고, 우리 아기. 엄마가 이렇게 신경 쓰니 안에서 쑥쑥 잘 크고 있지?" 하며 배를 쓰다듬었다.   

  조심에 또 조심을 하기 위해 집 밖 출입을 거의 안 하고 있었는데 창밖의 꽃들이 나를 자꾸 꼬여냈다. "이렇게 예뻐도 안 나올 거야?"라고 하듯이 너도나도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고 벚꽃축제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제주시의 왕복 2차선 전농로에는 양쪽으로 벚꽃들이 즐비해있다. 오래된 나무들이라 크기도 크고, 하늘로는 양쪽 나무들이 서로 맞닿아 벚꽃터널을 만들어내 벚꽃이 필 때면 차가 막히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도 매번 벚꽃시즌이 되면 출퇴근길을 전농로로 돌아가면서 차가 막힘을 즐기며 꽃구경을 하곤 했었다. 이곳은 벚꽃의 명소답게 매년 벚꽃잔치가 열렸다. 잔치가 열리는 동안 차 없는 거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맘껏 벚꽃을 즐길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먹거리와 즐길거리도 가득하다. 올해도 여지없이 전농로에서 벚꽃잔치가 열렸다. 조카들이 할머니를 모시고 벚꽃잔치에 갈 거라며 이모도 같이 가자는 연락이 왔다. 조심하던 시기라 잠시 고민하다 조카들이 보고 싶기도 했고, 걷기 운동한다고 생각하기로 하고 함께 가기로 했다.  

 

  벚꽃잔치에 가는 날은 다행히 날이 좋았다. 하늘도 파랗고, 햇살도 따뜻했다. 물론 바람이 불어 쌀쌀함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제주도 바람치고는 약하게 불어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할머니, 언니, 조카 3명과 나까지 총 6명이 함께 전농로로 향했다. 축제는 당연히 먹거리지. 가자마자 탕후루를 먹으며 사진을 찍고 즐겁게 구경하며 점점 안쪽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제주도의 모든 사람들이 전농로에 온 것일까?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벚꽃구경은커녕 앞으로 걸어가기에도 힘이 들 정도가 되었다. 코로나시기에 집콕했던 사람들이 한 번에 몰려온 느낌이었다. 솜사탕을 하나 사는데도 20분, 국화빵을 사는데도 40분, 감자튀김을 사는데도 5분. 계속되는 대기시간과 밀려오는 사람들로 진이 빠졌다. 오래 서 있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너무 무리하고 있는 느낌에 기분도 점점 안 좋아졌다. 초반에 탕후루를 먹으며 사진을 찍고 즐거웠던 기억은 어느새 사라지고 집에 빨리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조카들도 배가 고프고 지쳤는지 집에 가자고 졸랐고 결국 우리는 엄마집으로 가기로 했다. 인파를 뚫고 엄마집에 가서 편하게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자 이제야 살 것 같았다. 서로 찍은 사진을 공유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언제 짜증이 났었는지 모르게 즐거웠고 새로 생긴 추억거리에 다들 들떠서 쫑알쫑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래서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고 나들이를 가겠지? 너무 피곤해서 걱정이 되기도 하면서도 집에만 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 오랜만에 기분이 업되었다. 

  '아가야, 오늘 너도 즐거웠지? 벚꽃처럼 이쁘게 자라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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