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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밧드 Jan 15. 2023

칠전팔기,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수백 번의 실패 후에 이룬 사랑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은 한기욱의 <문학의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가>에서 3쪽에 걸쳐 소개한 장편소설이다. 저자인 주노 디아스가 ‘랩처럼 박동하는 사실주의에 현장성’을 부여하는 요인은 비어와 속어 같은 거리의 언어와 공상과학, 판타지, 포르노 같은 하위문화의 상상력과 어법 들이라고 소개한다. 구미가 당겨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다.

 

재미있게 읽었다. 무대는 미국의 뉴저지와 도미니카를 오고 간다. 주인공인 오스카 와오와 그의 누나와 엄마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는데, 화자는 누나의 남친이다. 이들이 작은 이야기라면, 엄마가 살아낸 도미니카공화국의 독재정권은 큰 이야기다. 


독재정권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군사독재 시절 대한민국과 닮음꼴이다. 독재자에게 밉보이면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끔찍한 수감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감옥에서 죽는다. 재산은 모두 빼앗기고 가족들도 풍비박산이 난다. 화자는 개인이 독재정권에 얼마나 맥없이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데, 군사독재 시절 대한민국에서는 흔했던 일이라서 그런지 분노는커녕 별 감흥이 일지 않는다. 


주인공인 와오의 연애 이야기가 좋다. 일곱 살 때 그는 매력적인 소년으로 두 소녀를 동시에 사귄다. 하지만 두 소녀가 떠나버린 후 그는 더 이상 여자를 사귀지 못한다. 여자애들한테 번번이 퇴짜를 맞으면서 자라나 몸무게가 140이나 된다. 그는 공상과학과 판타지와 컴퓨터게임에 빠진다. 그의 목표는 판타지의 명작을 쓰는 거다.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글을 쓴다. 


그러나 여자에 대한 욕망은 그칠 줄을 모른다. 퀸카쯤 되는 여자애에게 들이대고, 무시당하고, 운이 좋을 때는 몇 차례 대화를 나누고, 어떤 때는 졸졸 따라다닐 수 있는 허락을 받는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딱 한 번밖에 없었고, 대개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여자애들만 대거리를 해준다. 그것도 흔하디 흔한 섹스가 한 번도 없었을 정도로 그의 연애는 삭막하기 짝이 없다. 총각딱지를 떼주기 위해 친구들과 누나와 엄마까지 애를 쓰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마침내 진정한 사랑을 만난다. 할머니가 살고 있는 도미니카의 산토도밍고에서 이웃집에 사는 30대 중반의 여자가 상대다. 와오가 23년 동안 기다려 만난 여자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그녀가 국제적인 창녀라며 극구 반대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경찰관인 애인이 있지만, 그것도 상관없다. 


소설에는 나오지 않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그녀는 처음에는 와오를 놀림감으로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창녀인 그녀에게는 진정으로 사랑해 주는 남자가 없었다. 그녀는 와오 같은 남자를 만날 기회가 다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와오의 방문을 받아들였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다시 소설로 돌아간다. 와오는? 여전히 섹스는 없다. 그저 찾아가 만나고 이야기하고 그녀를 찬양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그녀의 애인은 둘의 그런 관계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와오에게 더 이상 그녀를 만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녀도 위험하니까 이제 그만 만나자고 했다. 하지만 와오는? 23년을 기다려 만난 사랑을 단념할 수 없다. 


어느 날 와오는 괴한들에게 납치되어 사탕수수밭에서 두들겨 맞고 버려진다. 마침 잘 아는 택시기사가 그들을 미행했다가 죽음 직전에서 그를 구출한다. 그의 몸무게는 거의 140에 이른다. 몸이 부실한 택시기사는 도회지로 나가 인부들을 셋이나 부르고 그를 택시에 싣고 병원으로 데려간다. 코뼈와 광대뼈가 으스러지고, 이빨 세 개가 빠졌고, 제7 뇌신경이 뭉개지고, 뇌진탕까지. 그는 사흘 동안 의식이 없었다. 숫총각이 창녀를 사랑한 결과다. 


두 달여의 시간이 흘러갔다. 와오는 결심을 하고 다시 도미니카로 갔다. 그리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오스카, 당장 여기를 떠나야 해.” 그녀가 한 말이다. 그가 말했다. 그녀를 사랑하며, 일주일만 함께 보내자고, 그러고 나서 끝을 내도 좋다고 했다.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그녀와 그럴 수 없다는 와오의 줄다리기가 한동안 계속됐다. 19일째가 되는 밤에 그녀가 와오를 자기 차에 태우고 라로마나로 갔다. 거기에는 경찰관인 애인의 친구들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둘의 사랑은 와오가 살해당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도미니카에서는 경찰관의 여자에게 집적대기만 해도 총살을 당한다고 한다. 


와오는 죽기 전에 우편물을 미국으로 보냈다. 편지에는 그녀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그들은 섹스를 했다. 그가 그녀 안으로 들어갈 때면, 그녀의 눈이 가운데로 몰린다고 썼다. 예수 찬양! 하지만 정말 좋았던 것은 섹스가 아니라 친밀한 조우였다고. 평생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커플만의 친밀함. 젠장! 이렇게 늦게야 알게 되다니, 이토록 아름다운 걸. 와오의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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