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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밧드 Mar 05. 2023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사랑의 규칙이 너무 불공정해서

<김광석과 철학하기>란 책을 작은 도서관에서 서가를 둘러보다가 발견하고 빌려 읽었다. 저자가 김광식으로, 가수 김광석과 동갑(1964년 생)이다. 김광식이 김광석을? 장난스럽게 보였지만, 진지했다. 저자인 김광식이 김광석의 노래 12곡을 철학적으로 해석하여 거장의 철학들과 비교했다. 그중 나의 애창곡인 <그녀가 처음 울던 날>에 대하여 간략히 소개한다. 


아무리 괴로워도 웃던 그녀가 처음으로 눈물 흘리던 날

온 세상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 내 가슴 답답했는데

이제는 더 볼 수가 없네 그녀의 웃는 모습을

그녀가 처음으로 울던 날 내 곁을 떠나갔다네 


여자가 왜 떠났을까? 사랑의 규칙이 공정하지 못해서라고 한다. 여자는 기다리고 남자는 기다리게 한다. 여자는 바쁠 때도 남자를 생각하지만, 남자는 바쁘지 않을 때만 여자를 생각한다. 여자는 사랑하고, 남자는 사랑을 받는다. 이것이 사랑의 규칙이다. 사랑의 규칙은 불공정하기에 행복한 사랑을 가로막는다. 


자식이 부모에게 불평하고, 부모를 부끄럽게 여기거나 무시한다면, 부모가 자식을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랑이든 공정하지 못하면 행복한 사랑을 하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레전드 김광석의 '공정한 사랑의 철학'이다. 


김광석의 철학은 롤스의 '정의의 철학'과 통한다. 롤스는 정의론을 바탕으로 어떤 사랑이 공정하고 정의로운지 알려준다. 사랑에 왜 정의가 필요할까? 사랑이란 두 사람 사이의 사회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세계에 대한 이론이 아무리 논리적이라도 진리가 아니라면 버려야 하듯이, 사람 사이의 규칙이 아무리 효율적이라도 정의롭지 못하면 버려야 한다. 


여기부터는 나의 생각이다. 


하! 다 좋은데, 사랑의 규칙이 정말 그런가? 여자는 베풀기만 하고 남자는 받기만 하는 게 사랑의 규칙이란 말인가? 내가 경험한 바로는 직접 경험이든 간접 경험이든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사춘기 때부터 지금까지 대개 내가 기다리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사랑했고 밥값도 내가 냈다. 그 반대의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상황을 아주 불공정하게 생각했었다. 


문학작품에서 보여주는 사랑의 예에서도 대개는 여자가 남자보다 우위에 있는 것 같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라. 분명히 여자가 우위에 있다. 서양의 기사도 정신은 분명히 사랑에 있어서 여자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여자가 거절하자 그 자리에서 권총 자살하는 남자 이야기도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춘향전>을 보면 여자보다 남자가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남녀의 신분 차이와 강력한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현실은 어떤지 대중가요를 통해서 알아보자. 여자가 남자를 기다리는 상황은 주로 남자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먼 곳으로 떠났거나 감옥 같은 곳에 갇혔거나 하는 경우다. 그 외에는 대개 남자가 여자를 어떻게든 해 보려고 하는데 그게 안 돼서 슬퍼하고 낙담하고 떠나는 이야기다. 조용필의 노래를 들어보라. 대개는 남자가 이루지 못한 사랑을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추억한다.   


그러나 그게 아니란다. 거참! 나는 대개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니라, 아주 특이한 세상에서 살아온 것 같다. 여자는 기다리고 남자는 기다리게 하고, 여자는 베풀고 남자는 사랑을 받는 세상, 나도 그런 곳에 살고 싶다. 그런데 그런 세상이 어디 있죠? MZ세대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렇다고요? 


부당한 처우를 받아서 온 세상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고통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부당한 대우로 누군가를 울린 적은 없는가? 울며 떠나는 상대를 붙잡지 않고 용서를 구하지 못한 회한은 없는가? 


레전드 김광석의 말, 그녀가 떠난 이유는 억울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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