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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쌍경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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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밧드 Oct 18. 2024

야훼 못지않은 예수

서기 64년에 로마에 대화재가 났다. 민심은 폭발 직전이었고, 황제 네로가 불 질렀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네로가 어떻게 했냐고? 화난 민심을 달래려고 기독교인들을 방화범으로 몰고 학살했다. 이때 베드로와 바울이 처형당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가 바로 '쿠오바디스'다.


이후 기독교는 로마에 공인받기까지 쭉 박해를 받았다. 그 이유는 딱 하나, 황제 숭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이 바로 그 배경에서 쓰였고, 복수와 폭력이 난무하는 묘사가 나오게 됐다. 예를 들면, 이렇다.


“주님은 성도들과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에게 피로 갚아주었으니, 이건 그들에게 당연한 대가다!” (16장)
“나는 그 여자가 성도들의 피에 취해 있는 걸 보고 충격받았다!” (17장)
“그 여자가 준 것만큼 되돌려주고, 그녀가 행한 것의 두 배로 갚아주고, 그녀가 부어준 잔에도 두 배로 부어줘라!” (18장 6절)
“하늘이여, 기뻐해라! 성도들과 사도들아, 예언자들아, 기뻐해라! 하느님이 그 여자를 심판해서 너희 원수를 갚아주었다!” (18장 20절)


여기서 ‘그 여자’가 누구냐고? ‘큰 바빌론, 땅의 창녀들과 흉측한 것들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존재, 쉽게 말해 로마다. 로마는 창녀와 흉측한 것들의 어머니답게 나쁜 것들만 줄줄이 낳는다.


그럼 하느님은 원수를 어떻게 갚아주느냐? 우상숭배한 사람들은 온몸에 종기가 나고, 물은 피로 변하고, 해가 사람을 태우고, 나라가 어두워지고, 유프라테스 강이 말라붙고, 지진이 일어나 도시들이 와르르 무너지고, 사람들 머리 위로 50kg짜리 우박이 떨어진다! ‘소돔과 고모라’에 재앙이 쏟아지던 거랑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 내린 거랑 비슷하다.


그런데 원수를 사랑하라던 예수는 어디 갔나? 간음한 여인조차 용서했던 예수가 여기엔 없다. 요한계시록의 예수는, 마치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구약의 야훼 스타일, 아니 그 이상으로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른다. 그 힘이 어마어마해서 지구는 물론이고 온 우주를 통틀어 대적할 존재가 없다.


요한계시록의 폭력성은 기독교인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줬다. 예수를 반대하는 자는 곧 원수고, 원수는 어떻게 한다? 죽여 없애야 한다, 그것도 몰살 수준으로. 그 결과, 후대 기독교인들은 이교도 박멸에 나서고, 십자군 전쟁까지 벌이게 된 거다.


심지어 이 책에서 한 글자라도 빼거나 붙이면 재앙을 받고, 천국 입성도 불가라고 했다. 와우! '밧모의 요한'은 자기가 쓴 내용이 오탈자 없이 완벽하다고 믿은 모양이다.


그런데 신약성경 중에서 가장 엉성하고 황당한 책이 요한계시록이다. 그럼에도 신약성경에 포함된 이유는? 당시의 기독교지도자들이 이 저자를 요한복음 저자와 착각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요한계시록의 저자를 ‘밧모의 요한’이라고 따로 부른다.


사실 기독교지도자들은 요한계시록 설교를 거의 하지 않는다. "지진으로 도시들이 와르르 무너질 거다, 50kg짜리 우박이 떨어질 거다, 사람들이 삽시간에 떼로 죽을 거다"라는 설교를 해 보라. 신자들이 모두 떠나 버릴 거다. 기독교지도자들이 요한계시록을 외면하는 이유다.


그 때문에 요한계시록은 교주 꿈을 꾸는 사람들한테 틈새시장이 됐다. 자칭 요한계시록 해석 전문가들이 새로운 종파를 차리고, 더러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럼, 이렇게 황당한 요한계시록에 근거한 종파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가 뭘까? 기독교지도자들이 그리스도 대신 돈과 권력을 숭배하고, 너무 자주 스캔들을 터뜨리는 것에 실망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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