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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에서 살아가기 Oct 21. 2021

캐치볼 02

“태형이 약 먹고 있었나 봐. 그래도 그렇지 죽을 작정하고 들이박았단 게 말이 되니? 사람 죽은지 몇 시간 만에 제대로 확인해보지도 않구 어쩜 그런 기사를 쓸 수 있다니.”


핸드폰 저쪽에서 지수가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듣고 있니?”    


“어? ……응. 근데 어쩌지 지금 춘천 와 있거든. 이따 다시 연락해도 될까?”


"아버님 병원?"


"응."


"그래, 그럼. 이따 연락해."


톨게이트를 얼마쯤 벗어나자 보이는 편의점 앞에 수진을 차를 세웠다. 속이 메스껍고 가슴께에 저릿한 통증이 느껴지는 게 신경성 위염이 도진 듯 싶었다.


탄산수 한 병과 알약으로 된 소화제 하나를 짚다 말고 수진은 멀뚱히 한 곳을 쳐다봤다.    


계산대 뒤로 진열된 담배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십 년도 더 전에 끊었던 담배를 불현듯 피우고 싶었다.    


“에쎄 체인지도 하나 주세요.”    


수진은 운전석으로 돌아와 담배의 포장을 벗겼다. 한참을 작고 각진 담뱃갑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일간지 문화부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 주말까지 캐치볼에 관한 원고를 넘겨달라고 했다.    


“태형 씨 추모하는 글로 마무리 하는 게 좋겠어요. 영화 내용도 좋은 쪽으로 포커스 맞추구. 왜 있잖아, 폴 워커 죽었을 때처럼 그런 분위기로 몰고 가자구요.”


“네.” 수진은 지나치게 짤막한 답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기자의 말에 맞장구칠 뻔뻔함은 없었다. 하지 않겠노라 거절할 배짱도 없었다.    


캐치볼은 도저히 안 되겠는데요, 라거나 사람이 죽은 마당에 분위기를 내자고요? 화내며 따져봤자 돌아올 상황은 빤했다. 칼럼을 쓸 전문가는 많고 많았다. 월 4회 60만원 남짓한 돈이었지만 수진은 그마저도 아쉬웠다.    


기브 앤 테이크로 이루어진 세상의 룰을 알게 되면서부터 수진은 앞이 뻔히 내다보이는 일은 굳이 바꾸려하지 않았다. 용기를 내면,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통화를 끝내고서 수진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불은 붙이지 않았다. 연기를 깊게 들이마시는 순간, 오랜 시간에 걸쳐 간신히 억눌렀던 그것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제어할 틈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수진을 휘감을지도 몰랐다. 담배를 파우치 안에 집어넣은 수진은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이번 주말에 칼럼을 송고하려면 늦어도 오늘까진 캐치볼을 봐야 했다.    


일층 로비에 모여 앉은 사람들 틈에 아버지가 있었다. 보험회사에 제출할 수납 청구서를 끊고 담당 의사를 만나 상태를 듣고 얼마나 더 머무를지 상의하는 게 먼저일 거라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마주침에 당혹한 건 아버지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보름 전에 왔을 때보다 아버지는 조금 더 회백색에 가까운 느낌으로 변해 있었다. 병원 사방에 칠해진 페인트처럼. 후줄근한 입원복 때문일까. 몇 가닥 남지 않은, 그마저도 염색을 하지 않아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 때문일까. 수진은 잠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평일인데 오늘.”    


마른 손으로 코를 비비는 아버지의 행동을 보고서야 자신의 그런 행동이 꽤 오랜만이었다는 사실을 수진은 깨달았다. 멋쩍을 때마다 아버지가 하는 습관이었다.    


“쉬는 날이라서요. 올라가요.”    


아버지가 따라오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수진은 앞서 걸었다.  

  

병원 복도 티브이에서는 태형에 관한 뉴스가 한 꼭지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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