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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상실

- 꿈에서 산이가 살아 돌아왔어

- 산이가 뭐래?

- 밥 달라고 쳐다보고 서있었는데 건강했던 모습이었어. 근데 나는 그 상황에서 '사료 다 버려서 없는데' 생각함 ㅋㅋㅋㅋ 난 요즘 산이 꿈 되게 자주 꿔. 이틀 전에도 꿈에서 입원해 있는데 아주 건강한 모습이었어

- 그래? 좋겠네. 나는 산이가 꿈에 안 나오는데

- 난 자주 나와

- 꿈에서 밥 좀 줘. 왜 개를 굶겨


개가 죽은 지 2주가 흘렀다. 나는 분명 3주쯤 흘렀다고 생각하고 달력을 확인했는데, 2주 전이었다. 시간이 훨씬 지난 것 같은데 이상했다.


동네 도서관이나 들렀다가 카페에 가서 일을 하려고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언니에게 카톡이 왔다. 그렇구나, 강아지 꿈을 꾸는구나. 별생각 없이 카톡을 주고받다가 별안간 평온한 마음에 슬픔이 들어오는 것 같아 서둘러 집밖으로 나와 걸었다.




나의 강아지(라고 부를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는, 사실 우리집 강아지)는 1월 18일에 안락사로 세상을 떠났다. 만으로 15살이었고, 나는 강아지가 20년쯤 살 줄 알았으며(희망사항), 분명 1월 초에 본가에 다녀올 때만 해도 청력과 시력이 약해졌을 뿐 아직은 꽤 튼튼한 노견이었다. 최근 2~3년 췌장염, 신부전, 허리디스크 등으로 고생을 했지만 그건 그냥 노견이 겪는 흔한 상황 아닌가. 강아지가 죽기 주까지만 해도 집에서 멀쩡히 걸어 다녔고 아픈 기색이 없었다고,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엄마는 말했다.


나는 본가에 살며 10년 정도는 강아지와 함께 살았다. 3년 전 독립을 해서 집을 나오며 강아지와도 헤어지게 됐다. 이번에 강아지가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때, 나는 그동안 강아지 없는 일상에 3년간 천천히 적응을 해왔다고 생각했다. 이미 연착륙을 하듯 강아지와 이별을 해왔다고. 그래서 가족들보단 내가 덜 슬퍼하고 걱정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나는 2주에 한 번 본가에 가서 강아지를 예뻐하고 좋아하고 바닥을 구르면서 사진도 많이 찍어왔지만, 본가를 떠나 다시 내 집으로 돌아오면 강아지를 잊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딱히 부모나 형제를 떠올리지 않는 것과 비슷했다. 그저 가끔 사진첩을 볼 때, 누군가 반려견 이야기를 꺼낼 때, 지나가다 비슷한 강아지를 봤을 때, '아참 내게도 강아지가 있어... 귀엽지.' 하며 강아지의 존재를 그제야 인식했다.


쓰고 보니 지난 3년이 무정하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프다.


강아지는 1월 13일 밤 급성폐렴으로 응급실을 통해 병원에 입원했다. 중환자실도 따로 있는 커다란 동물병원이었다. 강아지가 응급실에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혼자 영화관에서 영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를 그만두고 거길 갈까 잠시 생각했지만, 1시간 반쯤 걸려 도착하면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았다. 아마 가족들도 진료가 끝나면 강아지만 입원시키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을 테니까. 결국 나는 영화관에 들어가서 핸드폰을 계속 확인하는 진상이 되어 영화를 보았다. 처음엔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지만 영화를 봤고, 그 와중에도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이 너무 좋아서 나는 약간 혼란스러웠다.


그날 의사는 "오늘 밤이 고비"라고 말했고, 그 고비를 넘기면 회복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강아지는 첫날밤을 무사히 넘겼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본가에 갔다. 중환자실은 하루에 한 번, 20분만 면회가 허용되었다. 한 번에 2명씩만 출입이 가능해 가족들과 함께 가서 교대로 면회를 했다. 그나마 간호사들이 20분이 지나도 내쫓지는 않아서 적당히 눈치껏 더 머물다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강아지가 낯선 병원에 혼자 누워있고 우리는 강아지를 두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달라지진 않았다. 첫 면회를 갔을 땐 강아지는 등을 돌리고 누워 자고 있었고, 인사를 할 수 없었다. 집으로 오며, 강아지가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할까 봐 너무 두려웠다.


쭉 산소호흡기를 달고 항생제를 투여하며 며칠이 흘렀다. 숨을 쉬어도 산소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니 노력성 빈호흡으로 강아지가 24시간 헐떡이는 상태였다. 기력을 회복하지 못했고, 밥을 먹지 못해서 주사기로 식이급여를 했다. 사실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어느 날은 회복의 기미가 있는 듯 희망도 생겼지만, 기대만큼 호전되는 신호가 없었다.


입원 후 3일 뒤, 염증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지만(폐렴이 나았다는 뜻) 산소포화도는 여전히 80~90%대를 오가며 정상범위로 돌아오지 않았다(폐가 다른 이유로 망가졌다는 뜻). 의사가 CT를 찍자고 했다. 강아지가 기력이 없어서 CT를 찍을 때 따로 마취가 필요하지 않았다. 간질성 폐질환 진단을 받았다. 폐가 다 망가졌고, 호전은 불가능하고, 진행을 늦추는 약을 계속 투여할 수 있다고 했다. 퇴원 시 산소호흡기를 대여해서 집에서 돌보는 방법을 의논한다고 했다.


나는 이틀만 면회를 한 후 혼자 할 일을 하러 다시 집으로 돌아왔기에, 엄마에게 전화가 온 18일에는 동네 카페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다음 날인 19일에 다시 강아지를 보러 갈 예정이라, 미리 해놓을 일이 좀 많았다. 엄마는 늦은 오후에 전화를 걸어 안락사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산소호흡기 대여를 고려하고 있었던 상황인데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엄마와 언니는 강아지의 상태를 보고 마음의 결정을 대략 내린 것 같았다. 아빠와 나의 마음을 차례로 전화로 물어보고 있었다. 엄마는 강아지가 숨 쉴 때마다 쌕쌕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종일 헐떡거리는 게 너무 괴로워 보인다고 했다. 특히 오늘은 몸이 축 처져 가족들을 보고도 일어나지 못하고, 눈에선 생명력이 모두 빠져나간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게다가 의사는 지금 염증수치가 정상이지만 간질성 폐질환 때문에 퇴원 후 며칠 내로 급성폐렴이 재발할 수 있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이제 호전이 불가능하고 천천히 나빠지는 일만 남았는데, 산소호흡기를 끼고 퇴원을 해봤자 강아지가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그저 누워있는 것뿐이라는 현실, 우리에게 어떤 결정을 요구하고 있었다. 끝까지 명대로 살도록 버티게 도와 줄 건지,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안락사를 시켜줄 건지.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5~6일 전까지 멀쩡하게 걸어 다니던 강아지가 지금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다 죽어간다는 게, 가족들은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안락사를 고민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지금 생각해도 모든 일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었고,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준다.


엄마가 내 의사를 물었다. 대답을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어 잠시 정적이 흘렀지만, 나는 안락사에 동의했다. 병원에서 매일 강아지의 상태를 지켜본 엄마와 언니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끊고 카톡으로 다음날 오후 안락사를 하기로 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곧 다시 연락이 와서 그날 밤, 10시로 예약이 당겨졌다. 엄마는 강아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빨리 덜어주고 싶어 했다. 나는 바로 짐을 챙겨 본가로 떠났다.


우린 병원에 한 시간이나 일찍, 9시쯤 도착했던 것 같다. 주차장에서 내려 병원에 가는 짧은 시간에 나는 너무나 들어가기 싫다는 생각 했다. 가족들은 돌아가며 강아지를 한참 동안 안았다. 내가 의자에 앉은 채 강아지를 두 팔로 안아 무릎에 놓았을 때, 빠르게 헐떡거리는 강아지의 몸이 너무 따뜻해서, 정말로 따뜻해서 속절없이 울었다. 강아지가 죽은 뒤에도 종종 그 순간의 온도를 생각하면 계속 눈물이 났다.


의사는 우리 가족에게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마음의 준비가 되면 자길 불러달라고 말했고, 우리는 강아지를 계속 안아보며 1시간 반쯤 앉아 있었다. 병원의 배려가 고마웠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우리는 더욱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강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마음을 먹어도, 차마 의사를 부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의사를 부르면, 이제 의사가 와서 우리 강아지를 죽이겠지? 어떻게 그런 일을. 눈물 콧물을 쏟으며 몇 번을 망설이고 주저한 끝에 우리는 10시 45분쯤, 마지막 결정을 하고 의사를 불렀다. 결정을 내리고 왔지만 번복도 가능한 상황에서, 우리의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느낌이 스칠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안락사를 할 때 곁에서 보고 싶은지, 보고 싶지 않은지 물었다. 우리는 보기로 선택했다. 안락사를 하기 전 의사가 산소호흡기를 벗겼을 때 강아지가 숨을 몰아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답답하기만 했는데, 그 모습을 보니 사실은 그동안 호흡기에 의지해서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다는 게 더 맞는 설명인 것 같았다. 우리는 작은 진료실로 따라 들어갔다. 책상 주변에 둘러섰고, 강아지는 아빠가 안은 채로 의사가 수면마취제를 주사했다. 주사를 놓자마자, 아니 놓음과 동시에, 강아지가 잠들어버렸다. 우리는 강아지가 너무 빠르게 조용히 잠드는 것에 놀랐다. 의사는 강아지 콧등을 툭툭 건드려 반응이 없음을 확인했다. 이제 강아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번엔 강아지를 책상 위에 눕혔다. 숨을 거두며 몸에서 여러 분비물 나올 것에 대비해 책상엔 배변패드가 깔려있었다. 두 번째 주사는 강아지의 심장을 멈추는 약이었다. 역시 주사를 놓자마자, 죽음이 순식간이었다. 강아지의 입에서 약간의 피가 섞인 많은 양의 침이 흥건히 흘러나와 패드 위에 퍼져나갔다. 의사는 청진으로 확인을 하고, 강아지가 사망했음을 알려주었다.


안락사는 순식간에 끝났다. 너무 순식간에, 마치 생명이란 게 정말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단 두 번의 주사에, 그것도 주사를 놓자마자 1초 만에, 강아지가 죽었다. 그래도 15년 간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감정을 느끼고, 때론 제 의지를 표현하며 주관과 성격을 갖고 살아가던 생명이 한순간에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약간의 충격을 주었다. 충격적으로 슬펐다.


강아지는 18일 밤 10시 50분쯤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서 산소호흡기를 달고 5박 6일을 보낸 후였다.


"그래도 강아지가 (노력성 빈호흡을 끝내고) 마침내 편안해지는 것을 보자,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라는 말이 그날의 일기에 적혀있다. 미안함, 불쌍함, 고통, 슬픔, 안타까움과 죄책감이 뒤범벅이 된 그날 밤 유일한 위안거리가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읽으면 괴롭고 슬픈 이야기라 아무도 5박 6일의 자세한 사정 같은 건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은데, 쓰면서 구구절절 길어지기만 한다. 이게 어떤 독자를 위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정리이거나 혹은 어색한 변명의 시도라서 그렇다는 걸, 나는 쓰면서 느낀다.


사실 강아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안락사로 끝나지 않는다. 그 뒤로도 다음날 화장하기까지 세세한 기억이 한참이나 더 있다. 그날 밤 우리는 깨끗이 염을 해서 상자에 넣은 강아지를 받아 들고 집으로 데려왔다. 난방을 틀지 않은 차가운 거실 바닥에 두고 하룻밤을 재웠다. 병원에서 소독약으로 털을 아주 깨끗하게 정리해 준 강아지는 자는 듯이 옆으로 누워있었고, 그걸 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면 어쩐지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정말로 곤히 자는 강아지를 내려다 보는 것 같았다. 강아지가 단지 자고 있다는 착각이 들 때마다 일부러 강아지를 만지며 체온이 차갑게 식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튿날 자는 듯한 강아지를 차에 태워 장례식장으로 향하면서도 나는 화장을 하지 않고 이대로 집에 데려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룻밤이 지나 강아지의 몸은 딱딱하게 경직되고 아주 차갑게 식었지만, 귀는 근육이 별로 없는 부위여서 그런지 굳지 않고 말랑했다. 장례식장에서도 병원에서처럼 강아지와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을 주어서, 안락사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또 망설이느라 사람을 부르기 힘들었다. 이 작고 불쌍한 아이를 어떻게 태우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전날 밤 강아지의 몸이 굳기 전에 일부러 입혀준 옷은, 환경부 인증 화장시설에 같이 들어갈 수가 없어서 가위로 잘라 벗겨내야 했다. 강아지는 약 40~45분 만에 재로 변했다.


강아지가 죽은 날과, 화장을 한 그 이튿날에, 나는 슬퍼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가 이틀 내내 울고 또 울었다. 머리가 아플 때까지 울었다. 화장까지 했지만 집에 오니 여전히 집에 강아지가 집에 있는 기분이었다. 집에서 나는 무슨 작은 소음이 강아지가 내는 소리로 들리기도 하고, 부엌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냉장고 모퉁이를 돌아서 강아지가 걸어 나올 것 같았다. 밤에는 자기 전에 누워서 강아지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그리워하고 미안해했다.


강아지 장례 후, 나는 본가에서 3일을 더 머물다 집으로 돌아왔다. 어쩐지 강아지 장례를 하고 바로 집에 돌아오면, 좀 이상한 생각이지만, 강아지가 죽은 걸 실감 못하고 본가에 계속 개가 살고 있다고 믿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며칠 동안 본가의 비어있는 강아지 자리를 보며 나한테 개가 없음을 계속 확인시켰다. 사람의 장례도 3일을 치르는 이유가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3일 동안 그 사람이 진짜 죽었음을, 없음을 인식하는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지. 그렇게 총 5일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왔다.




내 집으로, 내 생활로 돌아와서는 곧 나아졌다. 일주일쯤은 잔잔하게 계속 우울하고 슬펐고 강아지 생각이 났고 조금 울기도 했지만, 2주 차가 되면서 괜찮아졌다. 내가 당장 마감에 맞춰서 해야 할 할 일들이 있어서 그냥 할 일을 했다. 하면서 적응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예전의 생활리듬으로 돌아오자,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강아지 이야기를 오히려 안 하게 됐다. 처음엔 강아지가 죽었음을 SNS에 올려서 알렸고, 친구들의 연락에 마음의 위로를 받기도 했지만, 2주 차쯤 되니 오히려 지인들에게 강아지 얘기를 꺼내기가 싫어졌다. 우리집 강아지가 죽은 걸 모르는 사람들에겐 굳이 꺼내 알리지 않았다. 아마도 강아지가 죽었다고 말하면 다들 안타까워하며 위로해 줄 것이고, 병명을 상세히 물어볼 것이고, 나는 강아지의 죽음을 설명하며 위로를 받아들이고 괜찮다 고맙다 등등의 반응을 해야 하는데, 그냥 그런 상상이 나를 썩 불편하게 했다. 이유는 명확지 않다.


그리고 더욱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말이 갑자기 싫어졌다. 그런 표현을 쓰고 싶지 않아서 그냥 말해야 한다면 개가 죽었다고 해야지 생각했다. 개가 '죽었음' '더 이상 이 세상에 살아 있지 않음'을 돌려 말하기가 싫었다. 어쩐지 기만적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요약하자면 지금 비교적 평온하게 일상으로 돌아와 있으나, 최근 며칠 다시 잔잔한 의문이 생겼다는 이야기다. 나의 상태에 대해서. 지금 애도의 감정이 옅어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상황일까? 아니면 그냥 감정을 좀 회피하려고 스위치를 꺼버렸을까? 마치 본가에서 돌아올 때면 가족들과 강아지를 잊어버리곤 했던 것처럼? 언니는 2주 내내 꿈을 꾸었지만 내가 번도 꿈을 꾸지 않았다는 건 혹시 그런 뜻인 걸까?


이것이 만약 회피라면 감정을 안 보이는 곳에 쌓아두는 것이니 나중에 후폭풍이 생길까 두려운 마음도 조금 있다. 그런 게 아니길 바라는데, 어쩐지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다만 글을 쓰며 조금 느낀다. 슬픔과 미안함, 회한과 죄책감이 한데 섞여 있다는 걸.




또 다른 변화도 있다. 강아지의 죽음을 경험한 뒤 나는 이 세상이 온통 상실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발견했다. 세상이 상실로 가득하다. 모든 건 언젠가 떠날 것들이다. 방금 지나친 귀여운 강아지도 언젠가 수명이 다해, 옆에 있는 저 주인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었다. 사실 강아지는 수명이 너무 짧다. 10~20년 후엔 필연적으로 나를 떠날 생명을 키운다는 건 보통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나는 그 사실을 알았으나 결코 몰랐지. 그런데 나는 언젠가 엄마가 떠나면 그것을 어떻게 견디지? 그런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나? 자신이 없다. 그래서인지 세상은 또한 죽음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사온 캐럴라인 냅의 수필집도 읽다 보니 상실에 대한 이야기였네. 온통 상실에 대한 글이네. 아, 내가 한 달 전에 예매해 놓은 이 연극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구나. 어쩌다 보게 된 뮤지컬이 또,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네...


생명은 유한하다는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없다. 하지만 그걸 진짜로 아는 사람은 일부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강아지를 입양하며, 강아지가 나보다 일찍 죽을 것이라는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게 진짜로 의미하는지 얼마나 고통스럽게 울어야 하는 일인지 정말로 아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다. 적어도 개를 처음 기른다면, 개가 짧게 산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를 가능성이 크다. 결국 알지만 모른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소리인데 어찌 보면 놀랍게 느껴지는, 아는데 모르는 것을 발견한 사람이 되어 나는 지금 온 세상이 상실로 이루어져 있다는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다. 원인을 굳이 따진다면 그것 때문이다. 1초 전까지 생명이었던 것이 아무렇지 않게 생명이 아닌 -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의 -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을 눈으로 목격한 기막힘. 기가 막히다는 말은 정말 그런 감정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생명이 꺼지는 것은 기막힐 정도로 쉬운 일이었고, 그것이 남기는 슬픔과 고통은 그 순간의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버거웠다.




며칠 전, 공동창작으로 작품을 써야 해서 회의에 갔다. 반려인과 반려동물을 넘어 무생물을 반려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중 반려 돌(stone)을 키우는 인물에 대해 이런저런 농담을 하며 스토리를 상상했는데, 사실 나는 돌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마자 대번에 깨달았다. 아, 그건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구나. 무언가 사랑하고 의지하고 애정을 쏟을 대상은 필요하지만, 결코 단 1그램의 슬픔도 겪고 싶지는 않은 마음. 그러니 절대 나를 떠나지 않을 존재에게만 마음을 주고 싶다. 그런 마음의 극단적 발현. 절대 늙지도 변하지도 나를 떠나지도 않을 영원의 존재인 돌을 사랑하기로 마음먹는 것.


만약 누군가 가족이나 반려동물이 떠난 뒤 돌을 키우기로 결심했다면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 현실에서 돌을 반려하는 사람들의 동기와는 무관하게, 나에게 그런 상상적 동기가 사무쳐서 나는 돌을 반려하는 사람들을 깊이 이해해버렸다.


결국 거꾸로 말하면 무언가에게 애정을 쏟는 행동은 항상 상처받을 위험을 동반한다는 뜻이다. 무언가 사랑한다는 건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것이고, 말랑말랑한 마음은 취약하기에 언제든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차라리 아무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살아가면 좀 더 삶이 평온할 수 있으련만 대다수의 인간은 외롭고, 애정을 쏟을 대상이 필요하고, '돌'을 사랑하지 않는 한은 또 상처받고 쓰러져 울게 될 날이 온다.


세상은 정말 상실로 이루어져 있다.




다들 정말 슬퍼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세상이 슬픔으로 가득 찼다는 걸 모르는 걸까?


그런데 나는 정말 무슨 기분인 걸까? 남들의 위로를 받기엔 겸연쩍을 정도로 평온하고, 강아지 생각에 슬퍼하기엔 무정하게 보낸 3년에 죄책감이 생긴다. 하지만 이대로 괜찮다기엔 괴이쩍게 불안하고, 강아지와 연착륙 같은 이별을 했다기엔 막상 안락사를 하며 견디기 힘든 슬픔을 느꼈다. 지금 마냥 그립다기엔 사진첩에서 사진 찾기가 오히려 두려울 때가 많고, 잊었다기엔 안 잊은 것 같고, 안 잊었다기엔 잊은 것 같다. 괜찮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잊기 전에 글을 써두고 싶었지만 그와 동시에 쓰고 싶지 않기도 했다. 정말, 괴이쩍다.


덧붙여: 산이는 가명이다. 강아지 이름을 아는 지인들이 글을 알아볼까 봐 가명을 지어냈다.




안녕, 나의 강아지.

기적처럼 여기 와서 15년 살다가 떠난 강아지.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람 마음 같은 건 너는 몰라도 되지. 다만 네가 편안하고 평온하고 행복했으면.


안녕, 나의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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