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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혐오가 들불처럼 번져올 때, 나가서 조금 걸었다

1, 2월은 조금 힘든 달이었다.


애매모호하게 아팠다. 아예 코로나나 독감 같은 것에 걸렸다면 집에 꼼짝없이 누워있다고 해서 스스로 한심하게 생각할 일도 없었을 텐데(쉴 명분이 있으니까) 딱히 그런 것도 아니라서 애매하게 아프고 애매하게 자괴감이 자라났다.


1월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올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무(無)의 상태로 시작하는 막막함은 있었지만 천천히 뭐라도 해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대단치는 않아도 개인적으로 할 일들이 좀 있었고, 간단한 글을 쓰는 알바도 했다. 그러는 사이 1월 둘째 주에 강아지가 아팠고, 셋째 주에 강아지를 떠나보내는 일이 생겼다. 2월 초가 되자 병원에서 컨디션을 체크하다가 교감신경계의 약간의 변화가 감지되어 소량의 항우울제 처방이 났다. 항우울제 끊은 지 3개월 만이었다.

나는 원래 위염이 있어서 위벽을 자극하는 항우울제를 먹으면 위염 증상이 올라오는데, 의사 선생님은 지난번보다 소량이니 위장약은 같이 안 먹어도 될 것 같다며 항우울제만 처방을 했다. 그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내 위장은 즉시 위염으로 직행했고, 종일 위산이 쏟아지는 느낌이 들면서, 먹기만 하면 설사를 하고, 밤에는 자다가 깨기 시작했다.

위염 증상에는 익숙한 편이라 처음엔 우습게 보고 양배추 밥이나 카베진으로 속을 달랬다. 항우울제가 원인이니 항우울제를 일단 끊으면 금방 괜찮아질 줄 알았다. (정신과에 전화로 상의를 하고 복용을 중단했다.) 그러나 위염은 나아질 듯 나아지지 않아서 결국 2주 가까이 바보처럼 고생한 뒤에야 내과에 가서 위염약을 받았다. 하지만 일주일치를 다 먹었는데도 증상이 조금 덜해졌을 뿐 여전히 속이 불편했다. 이곳저곳 컨디션이 저하하자 생산성(근데 원래부터 별로 있지도 않던 생산성)도 떨어지고 마음이 위축됐다. 음식을 먹고 설사하는 일이 잦으니 집 밖에도 덜 나가게 되었다. 나의 고질적인 계절성 우울과 위염의 콜라보였다.


결국 2월 말, 진료실에서 이 컨디션에 대해 얘기했을 때 선생님은 내 위와 장이 초토화된 것 같다며 신경안정제를 먹어보라고 새로운 처방을 했다. 진료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선생님이 물었다. “아참, 강아지는 어떻게 됐어요?”

사실 강아지가 아파서 안락사를 했다는 얘기는 그보다 3주 전(2월 초) 진료 시간에 이미 말했었다. 선생님은 잊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1월 18일에 안락사했어요.” 라고 말했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선생님은 초토화된 내 위장의 원인을 찾았다는 듯이 “그거네요.” 하고 말했다. 내가 강아지 때문에 위장이 아프다고? 사실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 강아지는 본가에 살던 강아지고, 나는 독립해서 3년 넘게 강아지랑 따로 살았고… 그래서 아마도 가족들보단 덜 슬프고… 괜찮고… 하는 설명을 주절주절 했다. 선생님은 “그래도 영향은 있을 거예요. 그게 전부는 아니더라도.” 하고 말했다. 애도반응은 몸이 아픈 형태로 오기도 해서, 지금 내 몸에서 가장 약한 부분인 소화기관이 아픈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사실 나는 위장병이 어떤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면 더 많은 다른 원인들이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다. 불투명한 미래라는 말로도 차마 다 표현할 수 없는 텅 빈 내 미래. 이제 바닥을 보이는 통장잔고. 그에 따른 불안. 각종 지원사업에서 정하는 청년(만 34세)의 밖으로 밀려나버린, 이제 좀 많이 먹어버린 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일이든 차일피일 미루고 보는 나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 이런 것들에 비하면, 강아지는, 강아지로 인한 슬픔은, 그렇게까지 큰 스트레스 요인이 아니었다. 뭐, 진료 시간 내로 다 전달할 수 없는 이야기도 많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날 병원을 나서며 조금 울었다. 강아지가 보고 싶어서.


이번에 신경안정제를 처음 먹어봤다. 기가 막히게 신경안정제를 먹기 시작하자마자 위와 장이 조용해졌다. 위산 과다분비, 위산 역류, 설사 등 고생스럽던 증상들이 하루이틀 사이에 사라졌다. 밤에 자다 깨는 일도 덜해졌다. 이렇게 신기할 수가… 그런데 대신 약간의 멍청함을 얻었다. 신경안정제를 먹으면 약간 졸릴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이것은 졸린 것보다는… 안개에 가까웠다. (알레르기 환자로서 비교하자면, 경험상 오히려 졸음이 쏟아지는 쪽은 항히스타민제다.) 신경안정제는 머릿속에 미묘한 안개가 낀 것처럼 약간은 멍하고, 몸이 좀 둔한 느낌이다. 책 읽기처럼 어떤 정신 활동을 하려들 때 예전보다 조금 더 바보가 된 느낌이 든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묘하게 무겁게 느껴지다 보니 운동이 가기 싫어져 발레 학원도 땡땡이를 쳤다. 그래도 계속 먹으니 처음보단 조금 적응이 되었다.

그렇게 3월을 맞이했다.


3월엔 감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감기는 이번 주의 일이다. 시작은 목이 조금 붓고 으슬으슬한 정도의 목감기였다. 다행히 열은 나지 않았다. 가벼운 감기로 생각했고, 감기약 먹고 따뜻한 집에서 하루정도 쉬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래서 이틀이나 집에 틀어박혀있었지만, 증상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열이 나는 것도 아닌데 몸이 좀 힘든 느낌. 또 그 애매모호한 컨디션 저하의 지속. 이 애매모호함이 짜증이 솟구쳤다. 그 사이 애매모호한 컨디션에 고민을 하다가 발레 학원을 한 번 또 결석했다. 결국 주말이 오기 전 내과에 가서 감기약을 받아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쉰 지 오늘이 벌써 4일째다. 집에 4일간 처박혀 있으니 솔직히 나는 더 엉망이 되었다. 활동량이 없으니 소화는 잘 안 되고, 밥 먹는 시간도 오락가락, 밥차릴 기운이 없다는 생각에 배달 음식도 더 자주 먹었다. 안 그래도 늘 엉망인 수면 루틴은 그야말로 초토화되었다. 아파서 쉰다는 핑계로 유튜브도 마음껏 보고 아이패드로 게임까지 시작했더니, 어제는 아픈 주제에 누워서 게임하다가  새벽 4시에 잤다. (생각해 보니 이러니까 병이 안 낫는…) 집에만 있으니 햇빛도 못 보고 더 우울해지는 건 덤이었다.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오늘은 점심을 챙겨 먹고 슬슬 집 앞 카페라도 가볼까 했는데, 어젯밤 새벽까지 게임에 푹 절여놓은 뇌가 다시 게임을 하고 싶다고 아우성을 쳤다. 나는 점심을 먹고 게임을 하기 시작해, 그 자리 앉아 저녁 먹을 시간까지 게임을 했다. 아이패드 스크린 타임을 확인했더니 어제 새벽과 오늘 오후에 게임한 시간이 합쳐서 7시간 50분이었다. 하루에 게임을, 7시간 50분을 했다. 아프다며… 빨리 낫고 싶다며….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자기혐오가 들불처럼 번져 일어났다.

 

나는 자기혐오와 친하다. 결코 낯선 감정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요즘만큼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었던 적은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난 두어 달 축적해 둔 무기력이 자기혐오라는 큰 불이 되어 나를 덮쳤다. 

저녁 6시 20분. 몸을 꽁꽁 싸매고 밖으로 나와 걸었다. 밖이 추웠다. 아직 날이 밝은 느낌이 있었는데 걷다 보니 금방 해가 떨어졌다. 혹시 몰라 가방에 책을 넣고 나왔지만 딱히 계획이랄 건 없었다. 일단 무턱대고 걷다가 적당히 소화가 되면 저녁을 밖에서 사 먹을 요량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소화도 잘 되지 않고 특별히 먹고 싶은 메뉴도 없어서, 이따 집으로 돌아가 햄버거를 배달시켜 먹기로 마음을 바꿨다. 대신 홈플러스에 들러 양배추를 하나 샀다. 다이소에서는 싱크대거름망과 머리끈을 새로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포카리스웨트도 한 병 샀다. 산책에 총 1시간이 걸렸다.

그중 한 50분쯤은 걷잡을 수 없이 내가 미웠지만, 마지막 10분 사이 나는 조금 누그러졌고, 5분 정도는 나를 약간 용서했다. 걷다가 소화가 조금 되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일 먹을 양배추를 사서 돌아가는 행위가 내 기분을 조금 낫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밖에 나오니 정신이 환기돼서 그랬는지도.

나는 슈퍼 앞의 과일 매대를 지나며 어제 내가 사 온 딸기를 떠올렸다. 어제 내과에 다녀오는 길, 나를 위해 사 온 딸기가 아직 집에 절반이 남아 있었다. 딸기가 중요한 건 아니고, 어제의 내가 나를 돌보는 행위를 했다는 점이 중요했다. 딸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오늘 빨래는 했잖아. 아무것도 안 하지 않았잖아.’ 잠시 잊고 있었는데 오늘 빨래를 하긴 했다. 기분은 아주 약간 나아졌고, 내일은 해가 떠 있을 때 꼭 외출을 하겠다는 다짐까지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오늘은 “자기혐오가 들불처럼 번져올 때, 밖으로 나가서 조금 걸었다”는 제목의 글을 브런치에 쓸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때 왜인지 모르게 잠깐 눈물이 나서 울었다. 1시간 동안 딱 5천보를 걸은 산책이었다.


무기력과 우울이 나를 뒤덮지 않는 한, 평소에는 하루 한 번 이상 외출하려고 신경을 쓰는 편이다. 아주 오래 걷지는 못해도 동네의 어딘가를 다녀오면 기본적으로 하루에 4~5천보는 채우게 된다. 

나는 오히려 그래서 더 잘 안다. 산책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걸. 오랜 산책을 다녀와도 내 미래도, 통장잔고도, 나의 나태한 기질도 그대로다. 변함없이 그대로. 오늘은 잠시 좋은 날씨, 좋은 코스에 기분이 좋아지더라도, 내일이면 인생이 다시 도로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도. 산책이 어떻게 만병통치약이겠어.

그래도 나가서 걷는 것은 때로 도움이 된다. 산책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겨우 작은 ‘도움’이다. 자기혐오가 들불처럼 번져오를 때, 그런 줄도 모르고 불길에 휩싸여서 침잠할 때, 나가서 걷다 보면 ‘아, 내 주변에 갑자기 불길이 있구나. 이건 급성 자기혐오 들불이로구나. 나는 요즘 바닥을 치고 있네. 바닥을 치면 다시 올라갈 수 있겠지.‘하는 마음 정도는 먹을 수 있게 된다.


오늘의 산책에서 돌아왔을 때 여전히 집은 엉망이었고 감기도 그대로이고 몸 컨디션도 나빴고 아까보다 조금 더 피곤해졌다. 게다가 나가서 이것저것 돈을 썼으므로, 나는 어쩌면 오늘 나가서 쓰고 온 돈만큼 조금 더 가난해졌다. 그래도 기분은 1시간 전과 많이 다르긴 했다. 숨 쉴 구멍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오늘은 게임을 그만뒀고, 아이패드로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낮에 널어놓은 빨래는 바삭바삭 잘 말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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