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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물들다 Aug 26. 2023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박준 시집

(문학과 지성 시인선 519)


                                                                         어떤 빚은 빛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이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시인의 말’에서     


리뷰란 단어 앞에 울렁증이 돋는다.

요즘 가장 핫한 시인 중에 김상혁 시인 외에

가장 관심 있는 박준 시인의 뭘 꺼내어 무지를 드러내야 하나.     


시인의 말 단어에서부터 뭐지?

난관에 부딪친다.

빚은 빛으로 잘못 쓰인 단어인 줄 알았다.

‘빚’과 ‘빛’이 서로 대립해야 하는 관계를

상호 작용으로 전하는 이 미덕은?     


1내가 아직 세상을 좋아하는 데에는     

불을 피우기

미안한 저녁이

삼월에는 있다

─「삼월의 나무」 부분     

봄을 좀 더 붙잡고 싶은 마음에 현실을 미래로

데려가는 데 주저함이 미안함이 남아있는 듯하다.

아직 세상을 좋아하는 시인의 따뜻함이 서두부터

마음을 데려간다.     


2눈빛도 제법 멀리 두고여름     

산간에 들어서야

안개는 빛과 나에게

품을 내어주었다

─「오름」 부분     

오름을 오르며 들숨과 날숨 이 천천히 차오를 때

안개도 빛도 숲도 만날 수 있는 곳 오름이다.

턱에 숨이 차오를 때 품을 내어 주지만 넉넉함은 사랑을 지나쳐 

내려가는 길 이 빠름에 현실을 미래로 데려가는데 어둠을 내어준다.

이 여름에 발왕산을 안개 낀 길을 걸었다. 넉넉한 품이 자연 앞에 겸손함을

배운다. 


3부: 한 이틀 후에 오는 반가운 것들가을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

─「장마-태백에서 보내는 편지」 부분     

태백은  탄광촌이었고 냇가 물까지 검은색이다.

미래의 어두운 그림자가 현실 앞에 떠돈다. 

미래의 깊은 시름과 암울함이 현실을 머뭇거리게 한다.

어두움을 장마에 씻겨 보내고

내일을 위한 시작을 희망으로 보낸다.     


4그 말들은 서로의 머리를 털어줄 것입니다겨울     

늘어난 옷섶을 만지는 것으로 생각의 끝을 가두어도 좋았다 

눈이 바람 위로 내리고 다시 그 눈 위로 옥양목 같은 빛이 기우는 

연안의 광경을 보다 보면 인연보다는 우연으로 소란했던 당신과의 

하늘을 그려보는 일도 그리 낯설지 않았다 

─「세상 끝 등대 3」 전문     

눈과 바람과 그 위로 다시 눈이 온다. 끝날 거 같지 않을

어둠에 옥양목 같은 빛이 드리우며 시인은 다시 빛으로

갈무리한다.     


빛이란 단어가 유독 내 눈에 많이 띄는 시였다.

빛이란 단어를 좋아하는 나의 성향이 박준 시집을

보면서 어두울 것이란 편견을 거두고 현실을 미래로

가져가는 박준 시인의 특유한 따뜻함과 사랑이란 

귀결점에 자기에서 당신으로 한 걸음 더 옮겨간 듯하다.     


며칠 전 이효석의 생가가 있는 평창을 다녀왔다.          

메밀꽃 필 무렵의 일부분이다.     

 

 산허리는 왼 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혀 하앴었다.


아직 메밀꽃은 피지 않았고 몇 년 전 다니러 갔을

때보다 메밀밭은 많이 갈아엎어져 없어졌다.

이제 세월 속에 새로운 것들에 자리를 내어주고 

한걸음 뒤로 가는 시인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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