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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 Mar 14. 2024

잔상

날씨가 제법 따뜻해졌다. 아침 출근길 차 안에선 약하게나마 히터를 틀고, 퇴근길 차 안에선 에어컨을 틀어야 할까라고 잠시 생각하다 참는 정도의, 딱 그런 날씨 말이다.


집에 가는 길엔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면서 항상 정체되는 짧은 구간이 있다. 그리고 그 구간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차들 사이로 서 있거나 걸어 다니며 무언가를 파는 여자가 있다. 파는 물건은 주로 열대 과일이거나, 추로스 빵, 물, 혹은 초콜릿과 에너지 바이다. 어떤 날은 작은 아이도 함께이다. 아이는 도로 가장자리에 작은 간이 의자를 펴놓고 앉아 있다. 아이는 주로 엄마가 쥐어 준 핸드폰을 보고 있다. 어떤 날은 동생인지 더 작은 아이가 엄마에게 아기띠로 안겨 있거나 업혀 있다. 난 애써 눈을 맞추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면 내가 사려 한다고 착각할까 봐 겁이 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실용성 따지는 성격을 버리지 못해 어차피 사도 안 먹을 거 같다는 마음이 커서 한 번도 살 생각을 안 한다. 그러면서도 어줍잖이 바라본다. 저 아이들의 아빠도 어디선가 열심히 아빠의 몫을 감당하고 있길. 감히 궁금해하기도 한다. 저 작은 아이가 컸을 때 저곳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어제는 약간 다른 장면을 보았다. 처음 진입 부분엔 한참 안 보이던 다른 여자가 홈리스 사인을 들고 서 있었다. 매 번 정말이지 얼굴이 무너져 버릴 거 같은 표정을 하고 있어 잊기 힘든 사람이다. 몇 발짝 뒤론 그전에 보던 물건을 파는 여자가 있었다. 업혀 있는 아기도 보였다. 겉옷으로 아이의 얼굴까지 올려 덮어 삐죽 튀어나온 팔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몇 발짝 뒤엔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 역시 첫 번째 여자 같이 도와달라는 사인을 들고 서 있었다. 그렇게 연달아 서 있는 세 명의 사람들을 보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 채 백미러로 올려다보니 나의 뒤 차에서 마지막으로 서 있는 남자에게 돈을 건네고 있었다. 나는 내 돈도 아니면서 저 차가 다른 두 명에게도 선의를 베풀었을까 궁금했다. 다른 두 명이 도움을 받는데 물건을 파는 여자만 물건을 못 파는 일이 없기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다른 길로 퇴근을 해서 아무도 보진 못 했지만 그 잔상이 아직 남아있다. 계속 떠올리다 보니 물건을 파는 여자만 백인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남았냐 하면 사실 그것도 잘 모르겠다. 섣불리 누군가의 삶을 추측하거나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오류를 범하고 싶진 않다. 그것이 내 기분에 대해서라 할지라도. 그저 적어보는 끝에, 어쩌면 다음번엔 뭐든 한 번 사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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