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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 May 16. 2024

예민해도 좋을 질문


주말에 가까운 지인들과 모여 식사를 했다. 이제 갓 백일이 지난 아기의 엄마부터 갓 돌이 지난 아이의 엄마, 초등학생 두 아이를 둔 나도 있었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도 함께 하는 자리였다. 아기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겨 안기는 중에 울지도 않고 크게 보채지도 않으며 방긋방긋 웃기도 잘했다. 자연스레 아기가 너무 순하다는 얘기기 나왔고, 뒤 이어 남의 아기는 원래 더 순한 거 같아 보인다 라는 얘기를 하며 함께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기 엄마 본인은 순한지 모르겠고 그냥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다 아기가 순한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어서 나의 아이들은 어렸을 때 순했는지 물어왔고, 난 둘째 아이는 성향 반, 상황 반 순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고, 첫째 아이는 예민했다고 대답했다. 예를 드는 상황을 열거하던 와중, 나도 모르게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토로하는 듯한 말투가 되었다. 그때 누군가 물었다.


“근데 예민한 아이가 안 좋은 거야? “


육아에 관한 책부터 방송 프로그램까지 다양하고 쉽게 정보를 얻는 요즘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저 질문에 대한 옳은(?) 답을 알 것이다. 나 역시 알고 있다. 예민하다고 안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같은 결로 키우기 쉽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질문자 역시 정말 궁금해서 물은 것은 아니었다. 예민한 아이를 두둔해 주고, 더 나아가 그런 아이를 힘들다고만 여기는 거 같은 엄마를 핀잔하고픈 눈치가 있었다고 느꼈다면 내가 너무 예민했던 걸까.


“예민해서 안 좋았다는 게 아니라 성향이 그런 편이었다는 거죠, 뭐…“

“그래~ 성공한 사람들 중에 예민한 사람들도 많고~“

그렇게 다른 주제로 대화는 옮겨 갔지만 그 이후 계속해서 그 질문은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신물이 올라오는 것처럼 마음을 계속 불편하게 했다. 왜일까?


우선은 불행 배틀을 하듯 ‘예민한’ 아이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과시하고 싶었던 마음이 내 안에 있었음이 창피했다. 평소 매번 정말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는 불행 배틀을 나의 아이를 등에 업고 했다는 것이 아이에게 미안했다. 나 역시 너에겐 예민한 엄마일 텐데.


그 질문이 특별히 나를 겨냥해서 던져진 공격성 강한 질문이었을까? 그렇진 않았다. 질문자는 나의 큰 아이를 태어났을 때부터 봐왔고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는, 나 역시 안심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며, 나랑 비슷한 면도 많아 공감 포인트도 많은 언니이다. 나를 공격하기보단 예민한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바꾸고 싶어 했다는 편이 맞겠다. 그리고 그 점에 있어선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고 동참하는 편인데 그 시선이 그 순간 나에게 적용됐을 때 올라오던 왠지 모를 불편함과 억울함은 무엇이었을까?


예민한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이의 필요를 맞추어 주는 것이 아니었다. 나를 가장 두렵게 한 건 아이가 내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까탈스럽고 유별나다고 핀잔이나 받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었다. 예민한 아이가 나쁜 게 아니라고 하면서도 사람들은 잘 웃는 아이를, 수더분하게 잘 어울리는 아이를, 앞에 곧잘 나서는 아이를 칭찬했다. 나는 힘들어도 세심하게 필요를 살펴주고 들여다봐 줄 수 있는 준비와 각오가 돼 있는 아이의 ‘엄마’였지만, 모두가 그의 엄마는 아니기에 나만 힘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고쳐야 하는 ‘문제’처럼 느껴졌고, 밖에서도 잘 생존할 수 있는 아이로 이끌어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어디서 선을 그어야 하나라는 갈등이 나를 제일 힘들게 했다. 그것은 과연 나뿐이었을까. 내가 가진 두려움이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예민한 면들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좋은 점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칭찬해 주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확신이 만연해지면 엄마들은 한결 더 편안한 마음으로, 더 여유 있고 균형 잡힌 모습으로 아이의 필요에 귀 기울여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예민한 아이라고 안 좋게 생각하지 말라는 그 말은 양날의 검이다. 한쪽엔 위로가, 반대편엔 그러니 힘들다는 말을 함부로 꺼내지 말라는 잣대가. 그 검은 엄마들에게 더 좋은 양육의 지침으로 쓰이는 만큼, 예민한 아이들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에 대한 가이드로도 쓰여야 하지 않을까. 결국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는 그런 말이 필요 없어지는 사회여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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