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O서점도 못 가보고 오다니. 이번에 그분 산문집도
나오는데. ‘
‘난 사실 그런데 실제로 가보는데 별 의미를.. ㅎ ’
‘난 책 가져가서 사인받고 싶었음. ’
‘그거 받음 모해 ㅎ‘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거지. 자신의 글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제발 쓰기를 멈추지 말아 달라고. ’
언니와 며칠 전 나눈 카톡 대화이다. 이번 여름에 가면 3년 전 한국에 갔을 때 못 가 본 서점을 꼭 가 보리라 별렀는데 결국 또 못 가 보고 온 아쉬움에서 시작된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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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 공모전에 보냈던 글이 탈락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작은 기회들에 응모했을 때 실패를 맛본 경험은 이미 여러 번 있었고, 이번 공모전은 오히려 규모가 더 컸던 만큼 뽑힐 가능성은 더욱더 희박했는데도 우스우리만큼 실망감과 허탈감이 컸다. 억지로 맞추어 쓰지 않고 진솔하게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었던 주제였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문제는 상을 받은 이후를 너무 구체적으로 상상했다는 거에 있었다.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혹시라도, 만에 하나라도 상을 받게 된다면…’에서 시작된 공상 속의 나는 이미 상을 받기 위해 홀로 잠시 한국에 들어갔고, 벼르던 서점에도 가 보고, 때마침 열리는 북토크에도 가 보고, 정말 오랜 시간 응원해 오던 친구의 전시회도 드디어 가보고, 생각보다 더 꼬불거리고 덜 잘린 머리를 다시 손보러 미용실에도 들리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사실은 좀 겁도 나서) 미뤘던 점점 커져가는 기미도 빼고, 동네 카페에 앉아 책도 읽으며 얼마 없는 시간을 일분일초도 허투루 쓰지 않고 꽉 차게 보내는 중이었다. 결과가 나오던 날, 곧 가보게 될 한국이 언제 또 가 보게 될까 싶은 곳으로 멀어졌다. 구체적으로 환상의 날개를 펼쳤던 만큼 현실로 내려오기도 쉽지 않았다. 수상자의 약력과 소감을 읽던 중, 이메일로 수상 소식을 듣고 환희에 가득 찼었다는 부분에 닿았을 땐 나의 어리석음이 가련할 정도였다. 수상했다면 당연히 미리 소식을 알렸을 터이고 사진과 약력, 소감문을 부탁했을 터이다. 발표일에 짠 하고 알게 될 거라 여기며 오매불방 기다렸던, 분수 따윈 몰랐던 순진한 내가 짠하고 우스웠다.
무엇 때문에 굳이 일을 벌여 이런 공허함과 실패감을 느끼는지 후회되었다. 그러다 내가 전에 작가님께 당부드리고 싶던 말, 쓰기를 계속해 달라는 그 말은 어쩌면 그저 내가 듣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실망하면서도 굳이 자꾸 기회를 찾아 글을 보내며 기웃거리는 까닭은 누군가에게 글이 나쁘지 않으니 계속해 보아도 좋다는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결과를 알고 느꼈던 감정들은 무언가를 새롭게 잃어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존재하던 것이 부각됐던 것뿐인지도 모른다. 내 안의 공허함이 나를 계속해서 쓰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 중에 하나일지도. 그것을 마주하는 일은 아프고, 슬프고, 허하다.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자리에서 한 바퀴 맴돈 거 같은 기분이다. 아니, 돌기라도 했으면 새로운 것들을 보며 시야라도 넓어졌을 테니 그것도 아닌가. 이런 마음들을 풀어내려 이런 부끄러운 일기를 또 쓰고 있으니 결국엔 결국엔 어디론가 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