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8

by 오롯

단이의 테니스 레슨 첫날. 긴장된 마음으로 아이를 내려주고 은이를 데리고 근처의 도서관에 갔다.


테니스를 배우는 센터는 소위 학군이 좋은 동네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 만큼 학구열이 높은 편인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곳이다. 내가 이곳으로 단이를 보내는 이유는 수소문 끝에 유명한 곳을 찾아냈기 때문이라면 좋겠지만 그런 부지런한 능력은 없고, 집 근처 테니스 배울 수 있는 곳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다 상위에 뜨는 곳들 중 하나를 골랐다. 난 이 좋은 동네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근처에, 굳이 따지자면 학군이 별로 좋지는 않지만 우리 가족의 정서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했을 때 적당히 편리하고 적당히 어울리는 곳에서 10년 가까이 살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렇게 더 부유한 (객관적인 면에서) 동네에 들리게 되는 경우, 나도 이런 곳으로 꼭 이사 오고 싶다는 마음이 자발적으로 간절히 든다기보다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무리하더라도 그런 마음을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부채감이 들곤 한다. 나는 왜 그런 마음이 먼저 들지 않을까, 나는 너무 이기적이고 게으른 엄마인가 하는 의문도 항상 따라온다.


오늘도 또 비슷한 생각을 하며 도서관에 들어갔다. 은이와 책도 고르고, 같이 읽기도 하면서 금세 '나는 정말 도서관을 좋아해. 이렇게 좋은 공간도 결국 직장으로 있게 되면 싫어질까. 지금이라도 사서가 되는 공부를 조금씩 해서 은퇴하고 도서관에 들어가서 일하게 된다면 정말 좋을 거 같은데' 라며 실상을 잘 모르는 사람만이 할 수 있을 거 같은 백일몽에 사로잡혔다. 그러다 앞 테이블에 앉아 있는 한 아이에게 눈이 갔다. 중학생 정도 됐을까. 고등학생일지도 모르겠는 남자아이였는데 춥지도 않은 곳에서 후드를 뒤집어쓴 채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엔 문제지처럼 보이는 책이 펼쳐져 있고 연필도 보였지만 내가 세 시간 가까이 머무는 동안 그 아이는 단 한 번도 그 연필을 잡지 않았다. 핸드폰으로는 게임을 하는 거 같았다. 중간중간 내려놓는 거 같다가도 일 분도 안되서는 다시 집어 들었다. 꽤 긴 시간 관찰한 결과 아이는 사실 게임을 그렇게 재밌어하는 거 같지도 않았다. 그저 공부가 하기 싫었던 거 같다. 처음엔 '저 녀석, 엄마에겐 도서관 가서 공부한다고 하고 나왔겠지. 근데 저렇게 게임만 하고 있네' 라며 그 아이의 엄마로 빙의해 괘씸한 마음이 들었지만, 점점 그 아이가 딱한 마음도 들었다. 어차피 공부도 안 할 거 차라리 집에서 큰 화면으로 제대로 하거나 아예 딴 거라도 하지. 눈치 보여서 나오긴 했는데 결국 여기서 후드 뒤집어쓰고 핸드폰으로 게임만 하고 있다니 (오늘 몇 시간 본 그 아이의 모습으로 그 아이의 평소 마음이나 부모와의 관계를 감히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어차피 내 아이가 아니라고 속 편히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아이의 몇 년 후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들어서 더 그랬다. 사실 공부라는 거 다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아무리 좋은 환경에 데려가 주어도 자기가 하기 싫음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아닌데도 공부하는 척하며 나를 속이는 관계가 아닌 아이는 그것에 대해 솔직히 말할 수 있고, 나는 그걸 잘 받아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바라는 대로 될 수 있는 거라면 그런 모습을 지향하고 싶다. 당장 테니스부터 단이가 나 때문에 억지로 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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