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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 Aug 04. 2023

나무, 바람, 마음

8월이 시작되자마자 끈적이던 더위가 거짓말처럼 꺾였다. 벌써 가을을 머금은 공기가 이내 섭섭하다. 시부모님과 함께 하는 두 달 동안 나의 여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느꼈던 탓일까. 지금부터인데 벌써부터 식어진 더위가 여름휴가의 끝이 다가옴을 알리는 거 같아 야속하다.


그래도 하루 종일 부는 바람 소리를 듣는 것은 기쁘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인데, 우리 동네엔 큰 나무들이 많은 편이라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으면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풍경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바다에서 일렁이는 파도 소리를 듣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소리를 가만히 앉아 듣고 있으면 바다가 뾰족한 돌들을 깎아 둥글둥글하게 만들 듯, 나의 모난 마음도 조금은 둥글둥글해지는 기분이 든다. 이런저런 다른 강도의 바람들을 겪으면서도 부러지지 않는 나무의 가지들은 꼿꼿함보다는 유연함 덕일 텐데. 그 유연함이 긴 세월 동안 꺾이지 않는 강인함을 주는 것일 텐데도. 바람에 맞추어 이리저리 흔들려주며 아름다운 소리들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내가 만든 세상에 갇혀 삐죽삐죽 뻗쳐놓은 마음의 가지들이 꺾이는 것만 억울해했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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