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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링 Nov 10. 2022

가을 소풍 나온 오리는 문제가 없습니다.

요즘 시간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것 같아서 몇 년 전에 갔던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집에서 정신분석하며 글 쓰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한번 가보았다. 사실 상담이 랄 것도 없이 크게 위로도 안됐는데 현 상태를 진단 받는게 은근 도움이 되었다. 결론은 네가 겪는 건 성장이자 성숙일 뿐이다. 강해지고 있는 것임. 전체적으로 많이 건강해졌다. 그리고 들으면서 나도 알았다. 다만 이 정도는 정상이고 이건 정상이 아니다 매번 구별하며 살기 좀 벅찼을 뿐이다.


이런 얘기 하는 이유는 그냥 오늘따라 왠지 하고 싶어서요. 친구들이나 가족들 앞에서 안 나오는 말들 왠지 그 곳에 가면 슬슬 나온다. 다는 안나옴. 그러고 나면 대수롭지 않게 다른 사람들한테도 말할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한테 이해 받거나 받지 못해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껴줍니다. 많은 얘기를 듣기도 합니다 고맙게도.
 

불완전한 상태 그대로 괜찮다는 말 하나도 도움 안되는데 실제로 불온한 걸 좋아하게 되면 괜찮다고 느껴진다. 나는 네가 완벽해서 좋은걸까? 아니. 이 시는 완벽해서 좋은걸까? 전혀 아니. 그냥 보기 좋다 듣기 좋다. 그 정도의 감각으로 좋아하고 있습니다. 보면 볼수록 닮는다고 그렇게 엉성한 나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힘이 생겼다. 예쁘게 아이돌 춤 추는 것보다 클럽에서 검은 옷 입고 막춤추는 사람 보는게 더 즐겁습니다. 지금의 제 취향은 그렇네요.


요즘 adhd 우울증 관련 책이 많다. 그런 책 팔면서 잘 팔려서 다행이다 근데 속상하다 괜찮은 걸까 대한민국 그래도 말이 나와서 다행이다 하다가 나중엔 아무 생각없이 팔았다. 우선은 각자가 여러 부정적인 뉘앙스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알 수 없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도 알 수 없는 상태 자체에 익숙해지고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위해선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고 들어야 한다. 왜 그래. 우울해. 왜 우울해. 힘들어. 뭐가 힘들어. 그런 말 듣고 말하다 보니까 울면서도 하고 싶은 말 다해서 기분 좋았다. 진귀한 말도 많이 들었다.  
 

예전에는 내가 경계선 성격 장애가 있구나 우울증이구나 하면서 살았는데 어느 순간 그걸 아 사람들에게 거절 받는 걸 무서워 하는군 익숙하지 않군 문장으로 풀어서 스스로한테 설명해줬더니 오히려 좋더군요. 그건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구 하면서. 좀 산만하고 우울한 기질이 있는데 그래서 생각도 많고 가끔 마음에 드는 글도 쓰고 재밌는 말도 하고 한강 아름답다 오리 가족 좋다 무화과가 달콤하고 정확해서 좋다 엄마가 그런 무화과를 맛있게 먹어줘서 보기 좋다 그런 생각도 하는거니까. 자신의 장점은 자신의 단점입니다. 사과의 앞면과 뒷면 그것은 모두 사과일 뿐입니다. 빨갛기도 하고 까맣기도 하다. 딱딱하기도 무르기도 합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선 사과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영어론 애플. 일어론 고멘네. 아아 링고인가.


성격 검사 결과 자존감 전보다 많이 높아지고 집중력도 높아졌고 식이장애는 애를 써서 고쳤습니다. 정신력이 좋네요. 그런 말도 들었다. 그런 얘기를 남의 입으로 들으면서 맞아요 맞네요 맞습니다 하다보니까 뭐야 문제가 없잖아 하게 되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때때로 충동적이고 극단적이고 가끔 길 걷다가 괴팍한 이미지랑 충돌해서 머리를 털고 털면서 놀랜 가슴 달래고 나무 보면서 진정하며 스스로를 바쁘게 다스리며 산다. 그런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는데 어느 정도 다 그런면 있지 않나요. 어느모로 보아 피곤하지만 보이지도 않는 정체성 찾다가 너무 심하게 절망말고(조금은 절망해도 되는 것 같다.) 그냥 내게는 이런 면이 있네 쟤는 저렇네 이쁜 옷 시끄러운 노래 이상하게 좋다 친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좀외롭네 하면서 한강에 소풍 나온 오리 가족을 봅니다. 가을이 되니 새끼들이 많아요. 왤까요? 겨울 되게 전에 가을을 즐기나 보다 생각하며 같이 가을을 탑니다. 슬픔에 대해선 함께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걸 배우지 못한 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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