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보려다 부산에서 만난 나의 아저씨, 히라야마상
퍼펙트데이즈를 보고 싶었던 건 오월에 교토에 갔을 때이다. 이미 개봉하고 있던 현지에서 보고 싶었고
마침 그때 만난 프랑스인 교토진( 아주 오랜 세월 교토에 터를 잡고 살고 있기에 ) 친구에게서도 네가 보면
좋아할 거라 추천했고 그냥 스틸 몇 장 만으로도 이미 마음에 끌려버려서 이 영화를 보기도 전에
사로잡혀버렸다.
작은 교토시네마 앞에까지도 갔지만 시간이 맞지 않았고 결국 포스터와 분위기만 둘러보고 발길을 돌렸다.
작년 여행 중에는 교토에서 다른 친구와 영화를 보기도 했지만 여행 중에 따로 시간을 내서 영화를 본다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서 다음 볼 날을 정했지만
다른 도시로 가느라 결국 퍼펙트데이즈를 만난 건
나의 도시 부산에서 정확히 밝히면 센텀시티
영화의전당에서이다.
우리는 살면서 몇몇 약속을 하면서 산다. 때로는 지켜질지 모를 거라는 걸 알면서 하는 다짐도 있고 지켜지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서 하는 말들이 있는데 가나자와여행을 하면서 만난 친구와 국내 개봉하면 같이 볼까
하는 약속을 하긴 했으나 다른 도시에 사는 그와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미리 말하고 먼저
보는 선택을 했는데 내가 간 주말의 그곳은 영화 상영 후 강연이 포함된 프로그램이었고 미니포스터도
나눠줘서 주말 많은 사람들 틈에서 보는 게 오랜만이라 낯설었지만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는 내내
극 중에 빠져서 한참을 몰입했다.
좋은 영화를 보면 글을 쓰고 싶어지고 누군가에게 이 영화를 알려주고 싶어지고 그랬던 과거의 나였다면 이
영화는 그냥 너무 많은 사람들보다는 그냥 이 흐름을 이해하는 혹은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면서도 이 글을 쓰기까지 한참이 걸린 건 자꾸 내 삶을 돌아보면서 반추하게 되고
그냥 좋았다.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여운을 붙잡고 싶지만 내 멘털이나 몸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못했기에 내내 퍼펙트하지 않고 그저 게으르고 나태한 내가
비겁한 변명을 하며 버티느라 이 글을 쓰는데도 시간이 한참 걸릴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 흠뻑 빠져서 엔딩타이틀을 보다가 깜짝 놀란 건 아는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감독이 빔 벤더스 인건
이미 알았고 야쿠소 코지 상의 얼굴 만으로 보고 싶었지만 각색에 타카사키 타쿠마 내가 애정하는 팟캐스트
에서 들은 이름인데 아마도 같은 인물이리라.
그러고 보면 그 팟캐스트와도 결이 닮아있어서 혼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배우 무카이 오사무 상이 일인
다역을 하면서 내내 조곤 조곤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들곤 했는데 그 이름을 여기서 볼 줄이야.
일본어를 좋아하지만 아직 모르는 단어도 표현도
많기에 코모레비도 기억해두고 싶어졌다.
코모레비는 인생에 조응한다. 빛과 그림자 자신과
타자 이 모든 뒤섞임 속에서 우리는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처럼 여러 사건 속에서 삶의 평화는 모든 문제가 없을 듯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삶의 우여곡절에 기꺼이 참여하고 견딜 수 있는 정신적 확보에서 온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 측면에서 엊그제 본 해리코닉 주니어가 나오는 findmeFalling 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넌 아무한테도 곁을 안 줬잖아.
함께 하는 고통을 감수하려 들지 않았어.
혼자인 건 쉬워 누군가 함께 하는 어렵지.
인생의 좋은 건 다 그렇듯이..."
이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지만 결국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고.
이 영화 둘 모두 두고두고 기억하고 내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겨서라도 그 결에 흘러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영화 퍼펙트데이즈는 도쿄 시부야구 공중화장실 재건축 프로젝트 중 일환으로 제작되어 다양하고 유명한
건축가들의 공중화장실을 볼 수 있는데 나에겐 개인적으로 시게루 반 토일렛이 기억에 남고 디자인하우스
일하던 해에 올림픽 공원에 들어선 페이퍼뮤지엄 덕분에 친숙한 이름이라 더 반가웠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저 그런 홍보 영상물을 넘어서서 화장실 너머의 평화의 이야기를 아주 근사하게
풀어내고 야쿠쇼 코지라는 배우는 궁극의 절정의 연기를 펼친다.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과 함께 내내 나오는 롱테이크에서 그의 얼굴을 보면서 눈물이 자연스레 흘렀다.
그냥 너무 저 감정을 알 거 같아서 나란히 앉아서 같이 태양을 향해 가는 듯한 느낌으로 카타르시스 같은 작은 물줄기에 나의 작은 어쩌면 사소한 평화를 느꼈다.
야쿠쇼 코지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는 멋진 세계가 겹치면서 떠올랐고 두 영화에서의 그는 다른 듯 아주 닮아 있고 그저 칸느국제필름페스티벌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겐 접속에서 흘러나온 Pale Blue eyes 곡이라던가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 등 좋은 곡들이 많이 흘러
나와서 음악상자를 선물 받는 듯한 느낌이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그냥 니나 시몬의 필링 굿을
내내 들으며 돌아갔고 마침 극 중 히라야마 상이 마시던 산토리 하이볼이 딱 하나 남아 있어서 얼음에
만두에 곁들이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던 저녁 시간이 되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은 그저 시놉시스 궁금해서 이 리뷰를 보지 않을 거라 내 맘대로 믿고 세세한 극 중 이야기보다는 그저 이 영화를 자연스레 흡수하듯이 흐름에 맡겨서 편하게 보기를 권한다. 되도록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 온전히 두 시간을 몰입할 수 있을 때 보기를 추천하지만 우울한 어떤 날 이 영화를 슬그머니 찾을지도 모르겠다. 어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껴두고 싶은 마음이 양존하는 그런 작품을 오랜만에
만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