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메는 운이 좋은 남자입니다. 부유하고 이해심 많은 여자와 결혼해서 두 딸을 낳았고, 재즈 연주곡을 틀어주는 칵테일바를 차렸는데 그마저도 장사가 너무 잘 되어 분점까지 냈습니다. 도쿄 아오야마에 4LDK의 맨션을 사고 BMW320을 몰고 다니며 하코네의 작은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죠. 한 마디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에요.
어느날 시마모토라는 여자가 가게에 찾아옵니다. 어릴 적 그들은 함께 냇 킹 콜이 부르는 <국경의 남쪽>을 들으며 침대에 누워, 희미하고 달착지근한 사랑의 동통을 느끼며 국경의 남쪽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 했죠. 그때 시마모토는 이렇게 속삭였어요.
“하지메. 네 안에는 아주 소중한 것이 들어 있어.”
잊을 수 없는 속삭임. 하지메는 중년이 돼서도 시마모토의 손바닥에서 전해진 온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하지메는 시마모토와 떠나겠다고 결심하죠.
“나는 아내와 두 딸들을 사랑하고 있어.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내게 무언가 결여돼 있다는 거야. 내 인생에는 무언가가 뻥하고 뚫어져 있어. 그 부분은 늘 굶주리고 메말라 있어.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나는 그 부분이 채워져 가는 것을 느껴.”
그러나 시마모토는 갑자기 사라집니다. 그녀가 왜 왔는지, 또 왜 도망치는지 영문을 알지 못한 채 하지메는 변함없이 수영을 하고 아이들을 바래다주고 칵테일 바를 운영합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사막이 되었어요. 모두들 제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취하고 다양한 죽음의 방식을 취하지만 마지막에는 사막만이 남는 것이죠.
아주 천천히 하지메는 상실을 극복합니다. 그는 아내에게 시마모토와 있었던 일을 털어놓은 뒤 이렇게 말합니다.
“사막을 생각하고 있어. 그냥 보통 사막. 모두가 거기에서 살고 있는 거야. 나는 늘 어딘가 새로운 장소로 가서 새로운 생활을 손에 넣으려고 했어. 지금까지 내가 껴안고 있던 무언가로부터 해방되고 싶다고 생각한 거야. 하지만 결국은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했어. 내가 껴안고 있는 상실은, 어디까지 가도 변함없이 상실일 뿐이야. 어떤 의미에서는, 그 상실은 바로 나 자신이야.”
무라카미 하루키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의 한 장면입니다. 하지메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이제 상실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