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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년의 영화 Nov 16. 2022

네온빛 노스탤지어 아래 자욱히 깔린 가스라이트를 태우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에드가 라이트 2021 리뷰

라스트 나잇  소호 (2021)

감독: 에드가 라이트

출연: 토마신 맥켄지, 안야 테일러 조이,  스미스 

별점: 4.5/5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안고 런던 소호로  ‘엘리 매일  꿈에서 1960년대 소호의 매혹적인 가수 ‘샌디 만나고, 그녀에게 매료된다. ‘엘리 ‘샌디에게 화려한 삶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꿈은 점점 악몽이 되어가고 ‘샌디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유일한 목격자가  ‘엘리’. ‘샌디 죽인 범인은 ‘엘리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이례적으로 이번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지 않습니다.)

올해 개봉한 수많은 영화 가운데 <라스트 나잇  소호> 만큼이나 극과 극의 평을 보이는 영화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혹자는  영화가 에드가 라이트의 색채가 옅어져 특유의 재미 역시 반감된 졸작이라 비판하고 다른 이들은 에드가 라이트의 영화 세계가 다시   새로운 경지로 도약에 성공했다며 그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비평하였다. 필자의 견해는 굳이 따지자면 후자에 훨씬 가까이에 있다. <라스트 나잇  소호> 현재까지 나온 에드가 라이트의 최고작이며, 영화를 둘러싼 모든 논란들 역시 종국에는 해소될 것이라 믿는다.

사실 에드가 라이트가 지금까지 보여  필모그래피는 에드가 본인이 가진 어떤 소년적인 감수성을 지나간 대중문화에 대한 그리움의 미학으로 직조해내는 작업에 다름 아니었다. 충족되지 못한 가족애(<베이비 드라이버>), 지난한 우정(<새벽의 황당한 저주>), 미숙한 사랑(사실상 그의 필모그래피  대부분의 영화들) 등의 주제들을 지난 문화에 대한 오마주와 함께 그려냈던 그는 여지껏 자신이 영미 영화계 내에서 20세기 중후반 대중문화의 마지막 옹호자   명임을 자처해왔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다르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없으나, 에드가의 영화 세계는 이번 작품을 통해  변곡점을 맞았다. 그는 어쩌면  영화를 이전과는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세계에 선언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라스트 나잇  소호> 현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60년대 감성을 그대로 좇으며 때로는  시절로 도피하던 유약한 소녀 '엘리' 과거의 사건이 투영된 환영 혹은 꿈을 통해  시절의 그림자를 깨닫고  과정에서 성장한다는 호러 스릴러적 모험 이야기다.  과정에서 에드가 본인이 지금껏 유토피아로 상정하고 그리워하던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자연스럽게 종국에 현실로의 복귀를 위해 극복되어야  것으로 상정된다. 따라서 영화는 이전까지 에드가 라이트의 영화들처럼 단순히 그리움의 미학을 전시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룬다. 이것이 <라스트 나잇  소호> 기존 에드가 라이트의 팬들에게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였을 것이다. 단순히 말하자면 필자는  변곡점을 누구보다도 지지하고자 하는 사람  하나일 따름이고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영화를 연이어  탓도 있겠으나, 영화를 보는 내내 웨스 앤더슨의 <프렌치 디스패치> 겹쳐 보였다.  영화는 20세기에 대한 향수와 그것의 극복이라는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공유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그것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철저히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필자가 느낀 <프렌치 디스패치> 한계점은 이미 해당 영화의 리뷰에서 다룬  있으니 우선은 넘어가도록 하자.) <프렌치 디스패치> 보여주는 만화적 표현, 분할 화면, 가변 화면비 등의 실험적 기법은 마치 고전 영화를 짜집기하고 종합적으로 재해석해 자신만의 새로운 형식을 창조해내고자  야심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연출은 헐거운 이음새와 산만한 진행으로 인해 오히려 해당 작품의 시네마성을 훼손시켰다.

한편 <라스트 나잇  소호> 다분히 의도적으로 60년대의 향수병으로부터의 탈피를 선언하면서도 영화의 플롯과 영상 연출은 전형적인 60년대 지알로 무비의 방식을 그대로 오마주하는 아이러니를 채택한다. 이러한 선택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묘한 모순을 느끼게 하고 종국에는 그들에게 영화  엘리의 성찰과 성장을 시네마적으로나마 간접 체험하게 한다. 말하자면 웨스 앤더슨이 그토록 많은 요소를 영화 속에 힘주어 집어넣어가며 그려내려 했음에도 실패한 20세기적 노스탤지어의 극복을 에드가 라이트는 춤추고 노래하며 즐기다가 비명 지르는 장르영화의 말초적 쾌감을 이용하여  하고 관객들 앞에 내놓은 셈이다.

또한 이전까지 에드가의 영화에서 단순히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었던 60-80년대 대중문화라는 주제는 이번 영화에서 보다 확장되고 입체적으로 변한다. 추억 속의 유토피아라는 박제에서 벗어나 비로소 재평가의 대상이 된 그 시절 런던은 화려한 네온이 빛나는 거리가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그 아래로 자욱하게 깔린 가스라이트가 여성들을 착취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에드가 라이트는 더 이상 현실을 잊기 위해 과거의 유토피아로 도피하라는 쉬운 선택을 관객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대상화 속에서 환상으로만 소비되어 왔던 과거를 직시하고, 그것을 현재적 차원에서 현대적 담론으로 계승하고 극복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애티튜드 변화는 그의 영화 세계에 있어 큰 분기점이며, 동시에 진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라스트 나잇  소호>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낸 에드가 라이트가 과거에 바치는 반성적 러브레터이며 앞으로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지켜봐달라고 관객들에게 내뱉는 선언이기도 하다.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현재의 평들과는 달리, 필자는  영화가 10 내에 마스터피스로 재평가받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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