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보다 옷걸이가 중요한 계절, 여름
비록 자퇴를 했지만 나름 의류학을 1년 동안 전공했던 사람으로서, 난 항상 스스로를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해왔다. 그러다가도 나는 여름만 다가오면 초라해졌는데, 그 첫 번째 이유는 원체 더운 것을 잘 못참는 성격인지라 집 밖을 나올 때의 모습을 잘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반팔티와 반바지로는 나의 뱃살과 팔뚝살, 엉덩이를 가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름에는 아저씨가 되는 사람을 패셔니스타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이십몇 년을 봄과 가을, 겨울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겨울이 오면 입고 싶은 따뜻한 목도리와 예쁜 코트를 장바구니에 쌓아두며.
그랬던 내가 처음으로, 올해 여름은 설렘에 부푼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이제 4개월 정도 흘렀으려나. 코로나 확찐자였던 나는 올해 2월, 양성 격리가 풀리자마자 헬스장을 등록했다. 코로나는 극성 E였던 내게 무려 40%나 되는 I성향을 선물해주었는데, 40퍼센트 가까이 늘어나는 동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내 몸무게는 이와 함께 우상향 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E가 맞다.) 아무튼, 코로나 덕분에 나는 헬스장을 등록하던 날 인생 최초로 95kg. 약 0.1t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4개월간 코로나 걱정 없이 운동과 식단을 열심히 한 덕분에 다이어트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처음 목표했던 무게까지는 아직 좀 남았지만, 몸도 많이 건강해졌고, 다이어트 후 가장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여름옷이 두렵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살이 쪄본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여름옷은 체형을 가려주기에 턱없이 부족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오버핏을 입으면 그 나름대로 덩치가 커 보이고, 딱 맞게 입으면 몸의 여러 군데에서 살려달라고 소리친다. 또, 내가 애용하는 '어두운 옷'들은 여름과 TPO가 맞지 않기 때문에, 여러모로 '살'은 여름의 천적이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여름이 무섭지 않다. 아직도 빼고 싶은 목표치까지는 많이 남았지만, '나도 해낼 수 있구나'에서 나온 자신감이 여름도 섭렵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심어줬달까.
여름은 본래 옷보다 옷걸이가 더 드러나는 계절이다. 건강, 미용, 옷 태,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 다 다이어트의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우리 이번 여름에는 자신감을 위해 시작해보는게 어떨까. 더운 여름, 치맥도 좋지만 그보다 큰 행복은 분명 존재한다. 예쁜 옷걸이에 예쁜 옷을 걸치는 순간이라던가, 입던 바지가 너무 크게 느껴지는 순간같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