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지만 가장 뜨거운 도시, 서울
NewYorker. 뉴욕에 사는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은 따로 있다. 지명에 사람을 뜻하는 -er을 붙여 별명을 만든 것. 그들은 스스로 뉴요커라는 별명으로 불리운다.
"Rainy day in NewYork", "Gossip girl". 넷플릭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미국 컨텐츠들 중 뉴욕을 배경으로 한 작품 속 주인공들은 뉴욕에 대한 격렬한 사랑, 혹은 격렬한 애증을 보인다. 출퇴근 시간마다 도로는 번잡하고, 지하철은 온갖 냄새로 가득차지만, 그럼에도 뉴요커들은 그들이 사는 도시를 사랑한다. 나는 그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내가 사는 서울을 사랑한다.
재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서울에 올라와 첫 출근길의 일이었을까. 서울의 지하철은 아침 8시 무렵부터 지옥철이 된다는 소문에 겁을 먹은 나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아침 7시, 칸에는 벌써 사람이 조금 차 있었고, 서울러로서 처음 맞이하는 출근길의 설레임에 난 자리에 앉지 않고 손잡이를 잡았다.
앞에는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가 있었는데, 읽고 있는 책이 너무 알록달록해서 자꾸 시선이 갔다. 자세히 보니 분홍, 노랑, 초록색의 형광펜 흔적들. 어찌나 열심히 밑줄을 긋고 형광펜을 칠했는지 책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아저씨는 사당역에 내릴 때까지 책에서 한번도 눈을 떼지 않고 무언가를 적어갔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출근길, 반백살은 훌쩍 넘어 보이는 아저씨가 보여줬던 그 열정적인 눈빛과 다 떨어져가는 책표지는 내가 진짜 서울에 왔음을 실감나게 했다.
서울에 올라온지 어연 2년이 지난 지금, 지하철 아저씨처럼 뜨겁게 살아가는 서울러들을 여럿 만났다. 가끔은 도시의 차가움에 외롭고 풀이 죽다가도, 사람들의 열기가 나를 서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붙잡는다. 차갑지만 가장 뜨거운 사람들이 모이는 이 곳, 이게 내가 서울을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이지 않을까.또 그렇게 탈서울을 갈망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우리 더 뜨겁게, 더 뜨겁게 살아남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