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레디 Nov 26. 2023

5년차 초등교사 살아남기

교사라는 원죄

 사회를 구성하는 성인은 직업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직업은 노동을 통해 수입을 얻게 해주고 이를 통해 생을 영위할 수 있게 만든다. 직업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주며 원하는 활동을 할 수도 있게 만들어준다. 직업을 가지고 노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멋진 일이다. 나는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이며 사회에 조그마하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다. 나는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되뇌인다.


 하지만 때때로 이 직업이 내게 원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의 직업은 초등교사, 학교 안에서 학생들에게 교육과정을 가르치고 생활지도를 하는 일을 한다. 나의 근무시간은 아침 08:40 ~ 오후 16:40 까지이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을 맡은 지금 하루 5교시 수업을 하고 점심을 먹이고 하교시킨다. 그 후로는 다음 날 수업을 준비하고 학교 내 업무를 한다. 이 일 외에도 하는 일이 있는데 내가 평소 맡는 일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1 정도라면 이 일 외의 일들이 내게 주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10에 수렴한다. 하지만 이는 정확하게 명시된 나의 업무도 아니고 추가 수당도 없는 일이다. 이런 일이 터지는 날은 정말 최악이다.


 올 해는 편안한 해였다. 왜냐하면 나를 괴롭힐만한 일이 라산이 한 녀석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라산이가 수업 시간 내내 욕설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교실 안을 빙글빙글 뛰어다녀도 그래도 참을만한 해였다. 슬프지만 다른 해들은 더 블록버스터 같은 해였기에 나름 단련이 된 것 같다.


 일이 터진 것은 체육대회를 얼마 앞두지 않은 날이었다. 체육대회 종목 중 파이프를 통한 공굴리기가 있었는데 파이프 공굴리기를 연습하던 중이었다. 한창 연습을 하던 중이었는데 한 아이가 갑자기 눈을 잡고 울먹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를 묻자 윤이라는 친구가 움직이면서 파이프로 자신의 눈을 스쳤다고 했다. 놀란 아이를 보건실로 보내자 보건선생님은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다며 얼음팩과 함께 교실로 올려보냈다. 아이는 얼음팩을 댄 후에도 계속 아파했다. 다친 부분이 눈이고 학교에서는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얼른 병원에 가보면 좋을 것 같아 학부모에게 연락했다.


 학부모는 내게 소리를 지르고, 눈이 다쳤다는 것에 해명을 요구하다가 자신이 지금 바빠 병원에 갈 수 없다며 학교에 병원에 데려다 줄 별도의 인력이 없는지를 물었다. 인력이 없다는 말에 학교에서 얘가 다친 건데 병원에 데려다줄 사람이 없냐고 또 다시 소리를 질렀다.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전화를 끊었지만 학생의 눈은 당장 외상이 보이는 응급상황도 아니었고 이런 경우 보통 보호자에게 인계하는 것이 메뉴얼이었지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학부모에게 방법이 없으니 알아서 애 데리고 병원 가라는 말을 하기 어려웠다. 갑자기 담임한테 전화가 와 아이 눈이 다쳤다고 하면 놀란게 당연하지만 이처럼 노골적으로 구는 학부모는 처음이었기에 당황스러웠다. 결국 담임교사인 내가 출장을 내고 병원에 데려다주기로 했다. 우리반 학생이기에 보건선생님에게 인계하기도 미안한 일이었다.


 나는 출장을 내고 학생을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 차 뒷문을 열어주자 차 먼지가 많다며 안타고 버티는 학생을 보며 참 밉상이다 싶었다. 1시간의 병원 대기를 기다려 진료를 보고 진료비와 약제비를 내 돈으로 내고 학생을 집 앞까지 내려다준 뒤 학교 교실로 다시 들어왔을 때, 마음이 참 불편했다.


 무엇부터 문제였을까? 체육대회에 파이프 공굴리기를 한 것? 사실 이 세상 모든 것은 조금이라도 다칠 염려가 있다. 이럴거면 학교에서 모든 실기 수업을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모든 것이 교사의 탓이 된다면 부상 염려 없이 이론 수업만 학교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학생이 다친 것이 마치 내 탓인 것만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그 아이의 눈을 다치게 한걸까? 내가 죄의식을 가져야 하나? 이에 대한 답은 아직도 안 나왔다. 다만 다른 교사가 나와 같은 일을 당했다고 하면 나는 네 탓 아니라고, 이 세상의 교통 법규가 있어도 교통사고를 당하고, 길을 걷다가도 넘어져 다칠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일은 발생할 수 있고 교사는 신이 아니니 네가 아닌 누구였어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해줄 것 같다. 하지만 죄책감은 계속 되었고 나는 쉬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는 평소의 템포를 다시 찾아가고 있었다. 학생이 다치고 학생이 마치 나 때문에 다친것처럼 따지는 학부모의 비난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일이라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불운은 계속된다고 했던가? 스포츠 강사님이 진행하는 체육 시간이었다. 몸이 좋지 않아 체육에 참여할 수 없는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 갑자기 선생님! 하고 부르는 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니 또 그 아이가 눈을 감싸쥐고 울고있었다. 아이고, 또 너냐? 소리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무슨 일인지를 묻자 건이가 머쓱한 얼굴로 가위바위보를 하고 손을 내릴 때 마침 그 아이가 지나가다 눈을 맞았다고 했다. 어쩜 이렇게 운이 없지? 실기 수업과 체육을 학교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이유다. 당연히 어린 아이들이 교실 안에서 신체 활동을 하면 이런 일이 생기는데 요즘은 이런 일 자체를 이해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럴 때 교사는 그야말로 동네북이자 스트레스의 창구다. 아이가 다치면 화가 나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이를 교사 탓으로 몰아가는 것은 옳은 일일까? 나는 물어보고 싶다. 학교 안에서 아이가 다치면 이는 모두 교사의 탓인가요?


 아이를 보건실로 데려가고 그 학부모에게 다시 전화를 해야했다. 학부모는 이전보다 더한 폭언을 내뱉었다. 자기가 지금 학교에 찾아갈테니 보건실에 대기하고 있으라는 말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그냥 알아서 학생 데려가시라고 말을 전했다.  교사가 되었다는 일은 원죄와 같다. 교직을 희망하는 이들은 이를 잘 유념해야 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5년차 초등교사 살아남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