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현장에 있으며 아이들과 어울리고 상호작용할 기회가 많다.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데 미숙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지만 작은 인간으로 좋은 면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도 많다. 우리반에도 그런 예쁜 아이들이 몇 있다. 좋은 일은 금방 잊고 나쁜 일만 뼈에 새기도록 기억하는 나란 인간이지만, 한 해가 마무리 되어가는 지금 올 해 나를 감동시킨 아이들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한다.(지금껏 기록을 보니 교직에 대한 악담만 있는 것 같아 이를 반성하는 글쓰기이다.)
우리반의 예리는 3녀중의 장녀이다. 항상 결좋은 머리를 하나로 깔끔하게 묶거나, 양쪽으로 땋기도 하고, 만두머리를 해서 학교에 오기도 한다. 앙증맞게 묶어놓은 그 머리를 보고 있자면 나도 나중에 딸 하나 낳아서 저렇게 깔끔하고 단아한 사과같이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예리는 쌍커풀 없는 조금 작은 것 같기도 한 눈을 가지고 있고 역시 작은 코와 입술을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의 미인상이다. 예리는 보면 거의 항상 웃고있는데 민 눈을 활짝 휘어 정감있는 웃음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서, 예리는 너무 착하다. 정말 너무너무 착하다.
예리는 항상 다른 친구를 배려한다. 반에서 어려움에 처한 것처럼 보이는 친구가 있다면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이런 예리의 다정한 마음씨를 받는 것은 주로 라산이이다. 라산이는 자신의 자리에 만화책이니, 지난 시간 학습지니, 수학 시간 만들다 남은 종이 찌끄레기니, 자신의 홈메이드 만화책을 만들다 생긴 쓰레기 같은 것들을 결코 자기 손으로 치우지 않는다. 이런 라산이를 보면 내 속이 뒤집어진다. 청소로 모둠점수를 얻어야 하는 같은 모둠 친구들의 속도 뒤집어진다. 이러면 보통 같은 모둠의 구성원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는 구성원에게 화가 나 쏘아부칠 법도 한데 예리는 그러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라산이의 자리를 대신 정리해준다. 빗자루로 대신 자리의 쓰레기를 쓸어주고, 엉망으로 더럽혀진 책상을 정리해준다.
이 꼴을 보고 있으면 정말 가관이다. 쪼그려 앉은 예리가 바닥을 열심히 쓸고 있다가, 제 책상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라산이에게 "라산아, 발 좀..."이라고 부탁하듯이 말하면 라산이는 발만 대충 치운다. 그러면 예리는 라산이의 발 있었던 자리를 또 빗자루로 쓸어주는 것이다. 게으르고 버릇없는 아들의 방을 청소해주는 엄마가 연상되는 모습이었다. 이 모습에 속이 터진 내가 예리를 불러 그러지 말아라, 라산이도 제 자리 치우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을 하자 라산이의 자리를 대신 청소해주는 일은 사라졌다.
라산이를 도와주고 챙겨주는 예리의 모습에 나는 물었다.
예리야, 라산이를 왜 이렇게 도와주는거야? 혹시 라산이가 무섭니?
아니요, 그냥 라산이가 적응을 잘 못하는 것 같아서 도와주고 싶어서요.
유니콘이 따로 없는 대답이었다. 나는 예리같은 아이가 우리반에 있음에 감사함과 동시에 예리의 선함이 나중에 배우자 선택 등의 문제에 큰 영향을 끼칠까 예리의 어머니가 할 법한 선을 넘는 과도한 걱정까지 했다. 배우자는 착하고 성실하고 네게 잘 해주는 그런 사람을 골라야해, 절대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골라선 안돼. 알겠지? 라고 묻고 확답까지 듣고싶은 심정이었다.
예리는 항상 배려를 했다. 라산이의 청소를 돕는 일 뿐만 아니라 반에서 양보를 해야하는 상황이 생기면 항상 예리는 자신이 양보하겠다고 했다. 랜덤으로 진행되는 자리뽑기에서 뒷자리를 뽑은 여자아이가 자신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자리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면 예리는 선뜻 손을 들어 자신이 바꿔주겠다고 했다. 예리의 착하고 다정한 마음씨로 우리반의 분란과 갈등은 조금이라도 줄었지만, 솔직한 말로 나는 예리가 걱정된다. 지금 맡은 아이들보다 겨우 20년 언저리를 오래 산 나이지만 그래도 밥이라도 좀 더 먹은 사람의 입장으로써 항상 양보하고 배려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것도 잘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된 사람의 입장으로 조금 더 이기적으로 행동해라 말하기도 웃기는 노릇이다. 그저 예리가 그런 다정하고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도 상처를 덜 받는 세상을 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