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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디 Dec 20. 2023

5년차 초등교사 살아남기

순수의 시대, 지누

 평범한 날의 학교 점심시간이다. 오늘 급식 메뉴로는 수요일도 아닌데 군대리아가 나왔다. 햄버거 스테이크와 머스타드로 비빈 샐러드, 모닝빵과 딸기쨈 세트를 군대에서 먹는 햄버거라 해서 군대리아 라는 이름이 붙었다. 4년간 학교 급식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보자마자 눈치를 채고 야무지고 햄버거를 만든다.


 내 앞에 앉은 소년, 지누도 마찬가지다. 모닝빵을 갈라 햄버거 스테이크를 쏙 끼우더니 "나는 야채는 싫어!" 하고 빵 위에 치덕치덕 스테이크 소스를 열심히 바른다. 지누아, 그렇게 바르면 햄버거는 어떻게 먹어? 하고 내가 물으니 햄버거에 젓가락 하나를 과감하게 찔러넣은 뒤 "이렇게 먹으면 돼요~ 와~ 햄버거다!"하고 활짝 웃는다. 그러더니 손에 소스가 묻든 말든 햄버거를 쥐고 맛있게도 먹어치운다.


 햄버거를 다 먹은 지누가 이제는 급식판 한 쪽에 딸기쨈 소스를 쭈욱~ 짜낸다. 그리고 밥 한 숟가락 먹고 딸기쨈 핥고, 밥 한 숟가락 먹고 딸기쨈 핥고, 반복이다. 열심히도 먹는 모습이 어이가 없어서 지누의 식사를 구경하고 있자 지누의 옆에 있던 온이가 한 마디 한다.


"야, 너 식사 예절을 좀 다시 배워야 할 거 같은데?"


 온이의 말에 허를 찔린 것처럼 내 웃음도 새어나왔다. 지누는 친구가 제 식사 예절을 타박한 줄도 모르고 헤헤 웃으며 햄버거 스테이크를 다시 받아다 먹는다. 어른 주먹만한 햄버거 스테이크를 숟가락을 써 반으로 가르고 한 입, 한 입, 두 입 만에 해치우고 급식실을 얼른 나선다. 지누는 뭐랄까,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오는 아이다.



 올 해 한 해가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 올 해 일 년동안 나에게 웃음과 행복을 가져다 준 고마운 아이들이 많았다. 오늘은 그 중 지누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 해볼까 한다.

 

 지누는 웃음이 많고 다정한 아이다. 친구 중에서는 저와 이름도 비슷한 이누와 친하다. 교실에서 친한 아이들을 관찰해보면 나름의 공통점을 공유하고서 친해지는 듯 하다. 지누와 이누는 동갑에 둘 다 집에서는 막내 아들 포지션을 맡고 있다. 둘 다 게임을 좋아해서 월요일에 주말에 뭐했어? 물으면 둘 다 “지누와 게임했어요.”/  “이누와 게임했어요.” 라 답한다.


 11살의 아이들이 으레 그렇지만, 아이들은 정말 잘 싸우고 화해하기를 잘 반복한다. 둘의 갈등이 생기면 보통 이누는 내게 이를 이르러 온다. 지누가 때렸다, 지누가 나를 밀쳤다, 지누가 나를 욕했다, 지누가... 로 시작되는 수많은 고자질들이 그것인데 이때 지누와 이누를 불러 해명을 요구하면 지누는 곧장 이를 인정하고 사과한다. 지누의 아기같은 맑은 표정과 "미안해"라고 얼른 말해버리는 사과 태도를 보면 이게 진심인가? 이 말을 위해서 '이런 일이 있었어요'를 쓰고 나에게 이르기 까지 한단 말인가? 이걸 들으면 마음이 풀리나? 싶은데 이누는 그 말에 또 괜찮아지는지 3분만 지나면 둘이 다시 재밌게도 놀고 있다. 이름을 당하면 상황을 중재해줘야 하는 나로서는 좀 답답할 따름이라 3일에 한번씩은 갈등이 생겨 이르러 오는 둘에게 진지하게 "이렇게 많이 다투면 둘이 안 맞는 것 같은데 다른 친구를 찾아보는게 어떠니?"라고 조언했지만 또 서로만큼 마음에 드는 친구가 없단다. 주먹으로 서로를 한 대 치고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또 금새 둘이 좋다고 즐겁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그 꼬인 것 없는 어린 마음이 부럽기도 했다.


 지누는 한 곳을 꾸준히 응시하는 버릇이 있다. 조선 시대부터 유교를 믿어온 우리나라는 어른과 눈을 마주치면 아랫 사람이 얼른 눈을 피하곤 하는데 지누는 그런 것 따위는 모르는 것 같다. 아직 너무 아기라서 그런 것일까? 수업 시간에 교실 천장을 이리 저리 쳐다보며 딴짓을 하는 지누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주면 지누는 내가 저에게 눈싸움 하자고 쳐다보는 줄 아는지 뚫어져라 시선을 맞대온다. 처음엔 시비거는 것으로 느껴져 오호, 이 녀석 봐라? 싶었지만 이제껏 지누가 내게 보여준 모습은 선생님이라며 졸졸 쫒아다니고 혼내면 혼나는대로 꾸지람 받고 하는 순수한 모습이었기에 내 안의 오해를 스스로 풀었다. 아직 사회의 눈치를 모를 나이니까 하며 넘어갔는데 이것이 실수였다.


 어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뚫어져라 응시하는게 예의가 없는 행동이라고 말해줬어야 하는데 나는 이를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2학기 공개수업이 있는 날, 지누는 교장 교감선생님의 눈을 몇 분간 빤히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교감 선생님도 질 수 없다는 듯 수업시간 내내 눈싸움을 하다 가셨다. 그 아이는 혹시 어떤 아이냐고 묻는 교감 선생님께, 나는 지누가 많이 순수하다고. 근데 정말 많이 순수하다고 답했다. 곧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가고 사춘기도 올텐데 지누의 순수함이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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