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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디 Dec 07. 2023

5년차 초등교사 살아남기

학생 관찰기 2편 - 나의 유니콘, 우성

 당신은 유니콘이란 동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모양과 크기는 하얀 말과 같고 이마에는 기다란 뿔을 하나 가진 신비의 동물. 유니콘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신기하게 느껴지는 전설 속의 동물이다. 유니콘의 신비한 능력은 다친 사람을 치유하기도 한다.  .


우리반에도 유니콘이 한 명 있다. 교직을 하면서 한 명씩 운좋게 만나는 희귀한 아이들이 있다. 남들을 향한 배려심, 깍듯하기 그지없는 예의, 이 시대에 사라진 선생님을 향한 존경심까지 탑재하고 학교에 오는 아이들을 가르켜 눈을 씻고 찾아도 찾기 어려운 전설 속 존재, 유니콘이라고 부른다.


오늘은 아껴두었던 나의 유니콘, 우성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모두 가명이다.)


 우성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저 우성이가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얀 친구라고만 생각했다. 11살의 남자 아이들이란, 모두 다르지만 또 같기 마련으로 ’적당히 씩씩하고, 예의없고, 장난을 치고, 신나게 놀다, 또 싸워 서로 씩씩대고‘ 의 반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성이는 달랐다. 불편한 상황은 참고, 기다림은 인내하고, 친구와는 상냥한 대화를 나눴다. 상대를 배려하는 말하기가 가능한 11살 남자 아이라니, 나는 놀라웠다.


 국어시간이었다. 내가 내는 초성에 가장 많은 낱말을 떠올려 말하는 모둠이 이기는 게임을 진행했다. 1,2,3,4,5 모둠의 순서로 게임을 진행했는데 모둠마다 정해진 초성이 달랐다. 1모둠의 초성은  ‘ㄱ,ㄴ’ 이었다. 가난, 기념, 고누, 개념… 4개의 낱말을 끝으로 더는 나오지 않았다. 1모둠 4점! 다음 모둠으로 넘어갔다. 2모둠의 초성은 ‘ㅅ,ㅈ’이었다. 사자, 수정, 성장, 시장, 새장, 서자, 숙주, 성정… 똑똑한 형진이가 있는 2모둠 다웠다. 2모둠은 8점을 얻었다.


우성이가 있는 3모둠의 차례였다. 3모둠의 초성은 ‘ㄷ,ㅈ’이었다. 동작, 대작, … 나조차도 낱말이 잘 안나오는 초성이었다. 초성을 잘 못 선택했나 하는 생각에 땀이 삐질 나왔지만 아이들 앞에서 티를 낼 수는 없기에 게임을 그대로 진행했다. 동작을 맨 앞에 앉아있던 친구가 말하고, 두번째 자리에 앉아있던 우성이의 차례였다. 우성이는 10초를 셀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3모둠은 1점을 얻은 채 다음 차례로 순서가 넘어갔다. 게임이 다 끝나고, 3모둠은 가장 낮은 점수로 꼴찌를 하게 되었다.


 꼴찌를 한 탓에 기분이 나빠진 3모둠 아이들의 야유가 우성이를 향했다. 왜 그거밖에 못했느냐, 너가 낱말을 떠올리지 못해서 우리 모둠이 졌다! 하는 원망과 비난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 오면 아이들은 이게 왜 내 탓이냐! 너라면 어떤 낱말을 댔을건데! 하며 맞불을 놓기 마련이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이 그렇다. 사실 내가 초등학교에서 관찰하는 갈등과 사회에서 성인들 사이의 갈등은 표현만 조금 다르지 그 내부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성이는 달랐다. 아이들의 공연한 원망을 받아치거나 비난을 반사시키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맞아, 나때문에 졌어. 미안해.’


우성이의 인정에 게임에서 꼴등한 탓을 누군가에게 풀고 싶던 3모둠 아이들도 가라앉았다. 사실 아이들도 다 알 것이다. 게임에서 진 것이 우성이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탓이 있다면 3모둠에  어려운 초성을 준 선생님의 탓도 있고, ‘ㄷ,ㅈ’에 해당하는 낱말을 찾지 못한 것은 3모둠 아이들 모두였다. 하지만 우성이는 아이들의 화를 화로 받지 않고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고 인정했다. 그를 통해 남의 화도 가라앉혔다. 남에게서 조그마한 불똥이라도 튀면 더 큰 불을 활활 태워 숲까지 태우려하는 나는 못하는 경지였다. 배워야 할 모습이었다.  


우성이는 5년 교직동안 내가 만난 남자아이들 중 가장 젠틀하고 다정한 친구였다.


 키가 작은 친구들이 교실 뒷 편 작품 게시대에 작품을 걸려할 때 키가 닿지 않으면, 우성이가 도와줬다.

친구가 책상 위에 의자를 올리다 힘이 부족해 힘들어하면, 우성이가 도와줬다.

내 교실 칠판을 윤이 나도록, 반짝반짝하게 닦아준 것도 우성이였다.

착하고 다정하기 이를 데 없는 우성이가 우리반이라니, 반배정을 뽑은 내 손에 스스로 뽀뽀라도 해야될 판이다.

이 착한 아이와 함께할 일이 이젠 한달도 채 남지 않았다. 남는 시간동안 학급 아이들과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아야겠다.


ps. 내년, 우성이를 맡을 선생님께.

  우성이는 정말 착하고 다정한 아입니다.

  유니콘과 함께 편안하고 행복한 한 해를 꾸려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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