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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Dec 04. 2023

치앙마이 3주 살기

느리게 살기 연습


치앙마이에서 3주간 지내게 됐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책임(과장급) 진급을 하면 3주짜리 휴가를 준다. 원래는 10월에 아내, 아이와 강릉에서 3주 살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9월 말 아내의 유선염과 수술이 있었기에, 우선은 회복에 집중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위약금 35만 원을 냈다. 그 후 보복휴가로, 겨울에 따뜻한데 가자! 하는 마음에 치앙마이에 갑작스럽게 오게 됐다.


연말에 회사를 비운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힘들고, 눈치도 많이 보이는 일이다. 실적 마감을 미리 해야 하니 일을 배속으로 해야 한다. 나는 야근을 너무 싫어해서, 차라리 새벽에 출근하는 편인데, 두 달간 거의 매일 6 ~ 6시 30분에 회사에 왔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야근하는 날이 하루 이틀 있었지만, 그래도 퇴근 후 가족과의 시간은 얼추 지켰다. 눈치야 뭐, 눈치 보는 사람이면 애초에 3주간 치앙마이 갈 생각은 안 하지 않았을까. 주변에서는 놀라움 반, 눈치 반 반응하지만, 할 일은 끝내고 간다는 생각으로 무장해 본다.


송년 모임도 당겨서 진행했다. 물론 나 때문에 그들이 송년회를 11월에만 하진 않을걸 안다. 12월에 또 하겠지. 다만 나를 핑계로 11월에 한 번 더 만나는 것, 그리고 만나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고맙다. 대여섯 번의 각기 다른 송년회 자리 후, 다음날 새벽출근 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아침 운동도 못 하고, 저녁 운동도 못 하는 상황, 점심시간에라도 트레드밀을 뛰었다. 두 달 내내 점심에 5km를 뛰었고, 이제는 30분 안에 들어오게 됐다.

물론 트레드밀은 지면을 박차는 동작의 부하가 적기 때문에, 실제 달리기보다는 현저하게 체력 소모가 적어서 가능한 것이다. 실외 달리기는 그렇게 속도가 잘 나올 리가 없다.


영하 5도였던 어느 토요일 밤, 실외 달리기의 기록은 처참했다. 너무 춥고, 찬 바람이 계속 들어오니 코는 예민해져서 재채기가 계속 나왔다. 진짜 울면서, 트랙 직선구간은 눈을 감고 뛰었다. 10km 뛰려고 나왔는데, 5km 만에 포기하게 됐다.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살면 어떻게 될까, 살이 찐다. 늘 이야기하는 게으름의 역설이다. 체중은 다시 95kg가 되었다. 물론 배가 나오고 하진 않았지만, 온몸의 붓기가 느껴지고, 매우 피곤하다. 전형적인 코티솔과 인슐린 증가로 인한 현상이다.




그렇게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사실 그냥 따뜻한 곳을 찾다 보니 고른 곳인데, 느리게 사는 노마드족들의 천국이라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 다시 오른 살, 느리게 쉬면서 다시 건강해져 볼 예정이다. 매일매일, 하루를 정리하면서,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도 여유 있는 리듬을 가지는 법을 익혀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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