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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Jun 11. 2023

아기가 가족을 기쁘게 하는 법

손바닥만 보여줘도

 토요일 아침, 아이 목욕을 시키고 옷과 기저귀를 갈아입혔다. 잠깐 쉬려고 앉으니, 부재중 통화가 찍혀있다. 아버지. 아버지의 전화는 흔치 않다. 저녁이라면 술 한 잔 걸치시고 하실 수 있지만, 아침에 아버지 전화가 와 있다니. 정말 정신이 번쩍 들면서 무슨 일인지 조마조마한 채로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예 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애기 목욕시키느라 못 받았습니다.


 - 너 애기 손금 좀 확인해 봐라. 양 쪽 다 원숭이 손금인지.


예? 원숭이 손금이요? 그게 뭐죠?


 - 가로줄이 하나만 있는지, 양 쪽 다 그런지 보라고.


예 잠시만요.



아기 손바닥을 봤다. 생각해 보니, 나도 처음 보는 것 같다. 아기 손금이 어떤지 볼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본 것 같다. 손금이나 운세에 관심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내 아버지도 봤던 손금을 내가 안 봤다는 게 조금 창피하긴 했다. 



예 아버지, 양 쪽 다 가로줄이 한 줄만 있네요.


 - 어 그러냐? 아이고.. 잘 키워야겠다.


왜요? 뭐 있나요?


 - 네가 찾아봐. 아무튼 알았다.



 살면서 손금에 한 번도 관심 가져본 적이 없는데, 인터넷에 원숭이 손금을 찾아본다. 막 쥔 손금이라고도 한다더라. 정주영 회장 손금이라는 말이 많다.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고. 아내한테도 간단히 얘기하고, 나는 결혼식이 있어서 집을 나섰다. 버스 타고 한참을 가고 있는데, 어머니께 메시지가 왔다.


[우리 아기 손금이 세계적으로 1.5프로 안에 드는 손금이라던데, 니 아버지 지금 난리 났다.]


 웃음이 났다. 우리 아버지가 저렇게 좋아하실 수도 있구나. 내가 어렸을 때도 그렇게 좋아하셨겠지. 내가 커서, 의식이 생기고 기억하는 아버지는 항상 근엄하고 감정표현이 적었는데, 저렇게 좋아하실 때도 있는 거구나 싶었다. 어머니도 근무 중에 메시지를 보내실 정도로 기분이 좋으신 것 같다.






 술을 좀 마시고, 집에 10시쯤 들어왔다. 혼자 육아의 시간을 보낸 아내에게 힘들었냐고 물어보니, 오늘따라 잘 자서, 괜찮았다고 말해준다. 자기도 손금을 좀 찾아봤다고. 돈 잘 버는 손금이라더라. 내가 우스갯소리로, "아 이제 가난은 우리 대에서 끝인가!" 하면서 웃었다.


 손금으로 삶이 결정된다면 얼마나 재미없겠는가. 삶의 매 순간 즐거움이 중요한 나에게, 예측 가능한 미래는 그렇게 달갑지 않은 것이고, 그래서 손금이나 운세, 사주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아이의 손금이 어떻다 한들, 오늘의 아이를 잘 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고, 앞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


 그래도 놀라운 것은, 아이는 손바닥만 한번 펴 줘도, 이렇게 온 가족을 기쁘게 한다는 것이다. 방귀 뀌고 똥 싸면, 어쩜 이렇게 방귀를 잘 뀌냐고, 똥을 잘 싸냐고 예쁨을 받는 아이. 자면 잔다고, 울면 그 녀석 목청도 좋다고 칭찬받는 아이. 세상 모든 아이가, 기억 못 하는 시절의 칭찬을 기억할 수 있다면, 세상에 자존감으로 고민하는 사람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알게 모르게, 기억했으면 하는 맘에, 오늘도 아이에게 예쁜 말을 한마디 더 건넨다.


 너의 손바닥 한 번 본 것 때문에, 우리 가족이 오늘 기분이 좋았어.  


자는 녀석 굳이 깨워가며 한 번 더 보는 손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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