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답을 줄 수 없다
후쿠시마 원전 핵연료봉 냉각을 위해 이용된 냉각수와, 지반 붕괴로 유입되어 함께 오염된 지하수를 통틀어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라고 한다. 도시바라는 회사에서 이 원전 오염수에 있는 방사성 물질을 정화하기 위해 ALPS라는 다핵종 제거설비를 개발했고, 이 설비를 통해 처리되어 배출된 결과물을 처리수라고 부른다.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용어로 인한 불필요한 오해가 없도록 재정의를 하고 넘어가자.
과학적으로는, ① ALPS의 유효성, ② 처리수의 안전성이 논란의 핵심이다. 먼저 ALPS는 삼중수소와 탄소 14를 제외한 방사성물질의 처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아마 IAEA나, 각국의 점검 목표가 이 부분일 것이고, 일본의 적극적 협조와, 점검 주체의 진실성 있는 검증이 있다면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다.
다음은 처리수의 안정성 여부인데, 이 부분이 바로 정치적 논란을 야기하는 부분이다. ALPS가 100% 신뢰할 수 있는 설비라는 전제 하에, 처리하지 못한 삼중수소와 탄소 14는 바다에 희석되면 안전하다는 입장과, 먹이사슬 최상단에 있는 인간 입장에서 방사능 오염 물질의 생물 농축으로 인한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는 입장이 갈린다.
이 부분은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한 영역이다. 간단한 과학이론을 보자. 먼저, 파인만이 이야기한 것처럼,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이론대로, 에너지는 물질로, 물질은 에너지로 전환이 된다.
이를 기반으로 얘기해 보자. 방사성 물질이란, 어떠한 이유로 인해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원자보다 뚱뚱해져 불안정해진 원자를 말한다. 이 물질은 살을 빼고 싶어서 에너지를 방출하고, 충분한 에너지를 방출하면 살이 빠져서 안정적인 상태가 된다. 이때 방출하는 에너지는 방사선 또는 방사능이라 한다. 한편 뚱뚱해지거나 살이 빠져도 편안해서 딱히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는 녀석들도 있는데, 이들은 비(非) 방사성 동위원소라고 한다.
수소는 원래 몸무게가 1 정도인데, 삼중수소는 몸무게가 3 정도 된다. 이 녀석은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에너지를 방출하다가, 비슷하게 몸무게가 3 정도인 헬륨 3이 되면 갑자기 안정감을 느껴서 정착한다. 헬륨은 원래 몸무게가 4 정도 되는데, 몸무게 3 짜리 헬륨은 굳이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는 비방사성 물질이다.
문제는 방출한 에너지의 효과다. 방출된 에너지는 강도에 따라 파괴력을 가진다. 강한 에너지를 가진 방사선의 경우, 우리 몸의 이중나선 구조로 되어있는 DNA를 부수면서 지나가거나, 세포를 부수면서 지나가기도 한다. 엄청나게 강렬한 방사선에 노출되면 몸이 많이 파괴되어 바로 죽는 것이고, 약한 방사선에 노출되면 천천히 DNA 단계에서 망가지면서 죽어가는 것이다.
자연계에는 원자력 발전을 하지 않아도 원래 몸무게보다 뚱뚱한 녀석들이 꽤 있다. 이 녀석들한테서 나오는 방사선을 자연방사선이라고 하고, 생물체가 노화하거나 암에 걸리고 죽어가는 이유를 이 자연방사선의 효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하며, 거의 대부분이 동의하는 이론이다.
ALPS를 통과한 처리수가 삼중수소나 탄소 14 같은, 원래보다 뚱뚱한 녀석들을 배출하게 된다면, 이것이 우리 몸에 들어와서 자연방사선에 더해져 노화나 암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이 불안감의 원천이다. 이에 반대하면서 안전하다는 의견은, 삼중수소와 탄소 14의 양은 매우 미미하고, 바닷물에 희석되면 영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이유는, 방사성 물질로 인한 질병 발병의 인과성을 증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만약 영향을 미친다 해도 장기간에 걸쳐서 진행될 것이고, 긴 시간 후에 발병한 암이나 기타 질병이 오로지 그 방사성 물질의 영향이라고 볼 근거는 취약하다. 병의 원인을, 그 사람이 좋지 않은 생활습관, 흡연과 음주, 또는 살아가면서 겪었던 다른 이유와 구분할 수 없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실제로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알 수 없다'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과, 개인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은 이해가 필요하다.
제조업에는 RPN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떠한 불량이 발생했을 때, 그 불량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 검출 가능한지를 판단하여 불량 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이 개념이 의미하는 것은, 피해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불량이라면, 불량 방지를 위해 어떤 투자를 하는 것보다 그냥 불량을 감수하는 게 낫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분명히 관리자 입장에서의 판단기준이 된다. 불량이 하나 발생했을 때 보상 비용이나 브랜드 이미지 실추로 인한 손실이, 불량 방지를 위해 투자해야 하는 금액보다 적다면, 그냥 불량을 감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량의 발생률이나 검출 가능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수많은 제품이 정상이라도, 나에게 온 제품이 불량이라면, 주관적인 불량률은 100%가 된다. 객관적 확률에 근거한 관리자의 입장과, 주관적 확률에 근거한 소비자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광우병 사태를 보자. 미국산 소고기는 아직까지도 안정적으로 유통되고 있으며,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인간 광우병)의 피해사례는 없다. 하지만 왜 그렇게 사람들이 비정상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했는지는, 정치적인 요인을 배제하고서라도 알 수 있다. 이 병의 치사율은 100%이다. 여러분이라면, 치사율은 0.1% 정도지만 1년에도 두세 번은 걸릴 수 있는 질병과, 평생 걸릴 일이 거의 없지만 치사율이 100%인 질병 중 무엇이 더 무서운가. 객관적으로 걸릴 확률이 0에 가깝다 하더라도, 걸리면 반드시 죽는 질병을 배제하고 싶은 게 당연한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 이 병에 걸릴 확률과 치사율, 그리고 우리나라의 미국산 소고기 소비인구를 계산해 볼 때 발생할 피해자는 0.01명도 안될 것이라고 분석된다면, 이 병을 배제하면서 발생할 경제적 손실과, 배제하지 않음으로써 얻을 이익을 계량할 때, 배제의 이유를 찾기 어려워진다. 여기서 개인과 정부의 입장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후쿠시마 ALPS 처리수의 방류를 대하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 몸에 들어온다면 확실하게 방사능을 뿜어낼 수 있는 물질이 방류된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그럴 확률은 매우 희박합니다."라고 말할 것이고, 개인의 입장에서는 "그 낮은 확률에 내가 당첨되면 어떡합니까. 당첨되었어도 이미 시간은 많이 흘렀고, 원인 규명도 어려워서, 책임을 물을 수도 없을 것 아닙니까."가 된다.
정부가 비용-편익분석을 할 때는 객관적인 척도로 계산한다. 하지만 개별 인간의 리스크 회피 성향은 모두가 다르다. 리스크를 대하는 인식이, 몹시도 냉철하게 단순한 숫자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객관적 지표보다도 극도로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볼록한 선호를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전자는 똑똑하고 후자는 멍청하다고 볼 수 없다. 우리의 선호는 '자유'의 영역이며, 존중받아야 한다. 그것이 '자유'를 강조하는 정부라면 더욱 존중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정부라면, 개인 간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공론화와 토론, 숙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아가, 현재 이 정책을 결정하며 비용보다 편익이 앞선다고 판단한 주체는 일본 정부이다. 우리나라가 그 낮은 확률의 문제를 배제함으로 인해서 무엇을 얻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차갑고 냉철한 이성으로 "이게 더 나은 방향입니다."라고 개인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이득이 있는지를 같이 설명하는 게 필요한 상황이다. 심지어 그 이익이 '국익'이라면, 낮은 확률이라도 감수해야 하는 '개인'에게는 어떤 이득이 있는지도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다이어트 이야기를 주로 하는 사람이 사회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멋쩍긴 하지만,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시류와 동떨어져서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이 코너를 시작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사회 이슈에 대해 조금씩 생각을 풀어나갈 예정이다. 나는 어떤 것도 영원불멸의 진리일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로서, 사람들의 수많은 다른 생각과 의견을 존중한다. 내 글도 하나의 의견일 뿐이고, 읽어주시는 분들이 한 번 더 사안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