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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Dec 09. 2023

운동은 의무일까

근면 성실이라는 죄악


아기가 함께 하는 해외여행이라 하니 주변에서는 짐이 한가득이겠다고 걱정했지만, 실제로는 캐리어 두 개와 유모차가 전부였다. 아기 옷을 제외하고는 어지간하면 현지에서 사서 쓰자는 생각이었다.


그 와중에도 내 캐리어의 큰 부피를 차지한 것은 내 러닝화였다. 치앙마이를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에 챙겼는데, 이제 여기 생활이 좀 안정화가 되었으니 내일은 달려보려고 한다.




 내가 있는 콘도는 수영장을 계속 이용할 수가 있다. 물을 좋아하는 나는 계속 수영을 하고 있는데, 그동안은 물안경 없이 하다 보니 눈이 너무 아파서, 오늘은 물안경도 샀다. 잊고 있던 수영의 즐거움이 너무 재밌어서, 한국에 가서도 수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수영장 옆에는 인조잔디를 깔아놓은 약간의 공터가 있다. 여기에서는 맨몸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지원되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지원되는 애플 피트니스 프로그램을 아이패드로 재생하면서 운동하는 사람도 있고, 살면서 실제로 본 가장 멋진 몸을 가지고 있던 흑인 한 명은 케틀벨을 가져와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수영장을 바라보고 러닝머신이 배치되어 있는 피트니스 센터도 있다. 여기에는 꽤 많은 백인 노인들이 일립티컬 머신이나 실내 자전거 머신, 러닝머신으로 운동을 한다. 한 젊은 흑인 여성은 덤벨로 강렬한 어깨운동을 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면 더 많다. 나는 치앙마이에서 님만 해민이라는 지역에 숙소를 잡고 있는데, 여기는 치앙마이 대학교 인근의 대학가 같은 곳이다. 태국 로컬의 느낌보다는 세련된 젊은이들의 문화가 더 지배적인 곳이다. 그런 곳에서도, 길에서 심심치 않게 달리기 복장을 하고 뛰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12월 17일에 있는 치앙마이 마라톤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한다. 치앙마이 대학교 안은 달리기 정말 좋은 환경이고, 앙깨우 호수 주변은 매일 달리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곳이었다.


치앙마이 대학교 안에 있는 앙깨우 호수





 나도 이전의 여행까지는, 새벽같이 일어나 조식을 먹고, 오늘 가려고 정해둔 곳을 찍으면서, 숙제하는 사람처럼 여행을 했다. 호텔의 피트니스 센터는 도대체 누가 쓰는 것일까 의문이었고, 땀나는 달리기는 생각도 못했으며, 수영장은 여자친구 사진이나 찍어주는 곳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 오기 전, 다이어트를 하는 도중 러닝이라는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면서, 많은 인식이 바뀌었다. 특히 가장 중요한 변경점은, 운동을 더 이상 의무의 영역에 두지 않게 된 것이다.


 최재천 교수님이 하신 말씀 중, 운동은 호모 사피엔스만 하는 이상한 행동이라는 말씀이 있었다. 야생에서 운동은, 생존에 불리한 상태를 유도하기 때문에, 그 어떤 동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직 인간만이 더 건강해지고자 운동을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운동은 필수가 아닌 것이다. 운동은 하나의 즐거운 활동이다. 생존을 위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힘든 활동이 아니라, 바쁜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마음을 비우기 위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 하는 활동인 것이다. 영화나 음악 감상, 미식 활동, 공예 활동과도 같은 선상에 둘 수 있겠다.




 예전에 뉴욕 타임스에서, 아이오와 대학교의 연구결과를 보도한 적이 있다. 주 50분만 달려도, 그 이상 달리는 것과 사망률에 있어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는 것이다. 주 50분은 평일 하루 10분으로 쪼개도 되고, 주말 하루 50분 몰아 뛰어도 상관없다고 한다. 여기서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주말에 취미로 한 시간만 숨이 가쁜 운동을 해도, 운동으로 누릴 수 있는 건강 상의 이점은 모두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운동을 꾸준히, 열심히, 매일 하라는 사회적 압박에 시달린다. 사회 풍토가 운동까지 강요하는 것이다. 살 빼려는 사람한테 살 좀 빼라는 말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운동에 대한 의무감은 운동하려는 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한국 사회는 여전히,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의 기준을 일반인에게 요구한다. 사실 운동만이 아니다. 누가 뭐 한다고 하면 업계 최고의 기준으로 훈수질 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유구하고 빛나는 전통이니까.


 이걸 이겨나야 한다. 남의 평가에서 벗어나고, 무의미한 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운동은 재밌는 활동이다. 매일 얼마를 달려야 한다면 너무 싫겠지만, 정말 내가 뛰고 싶은 만큼만 뛰는 날들을 조금씩 해 보면 된다. 내 목표는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힘듦이 즐거움을 넘어서기 전에 끝내면 된다.


 자율적으로, 즐겁게, 뛰는 시간이 늘어나고 적응이 되면, 뛰는 것은 이벤트가 된다. 저녁에 뛸 생각에 퇴근시간이 기다려지고, 오늘은 어느 코스를 달려볼까 찾아보게 된다. 처음에는 호흡 잡는다고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적응이 되면 길에 나와 세상만 존재하는 기분으로, 마음과 머리를 비우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행위가 된다.


 헬스도 마찬가지다. 매일 가야 하는 게 아니다. 저렴한 헬스장을 찾아서 등록하고, 월 1~2회만 나가도 된다. 요새 월 3만 원 헬스장은 찾아보면 많은데, 이런 헬스장의 일일권은 2만 원에서 2.5만 원 정도 한다. 두 번만 가도 금액으로 본전 뽑은 셈이다. 아까워할 필요 없다. 그리고 가서, 바벨이나 덤벨을 들어보자. 청년이건 장년이건 상관없다. 자신이 들 수 있는 만큼만 들면 된다. 머신과 다르게, 바벨이나 덤벨을 드는 프리웨이트는 강렬한 성취감을 준다. 중요한 건 달리기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하는 목표 설정이다. 체력 단련이 아니라, 놀이라고 생각하고, 하나씩 깨 나가는 것이다. 나중에는 월 1~2회만 하라고 해도 스스로 더 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금전적 여유가 된다면, 주변에서 하는 원데이 클래스를 이거 저거 들어보면 좋다. 실내 축구, 크로스핏, 아이스하키, 클라이밍, 필라테스, 발레, 탁구, 테니스, 등산 등 정말 많은 원데이 클래스들이 있다. 한 번 하고 안 한다고 스스로 의지박약이라고 자괴감 가질 필요가 없다. 오히려 매번 다른 활동을 하면, 우리 뇌의 가소성이 극대화되고, 신체의 근신경과 인대의 활성도가 증가하여, 잘 다치지 않는 몸이 된다. 그러다가 너무 재밌는 운동을 발견하면, 또 정착하면 된다.


 우리는 엘리트 운동선수가 아니다. 근면 성실하게 운동할 필요가 전혀 없다. 재밌는 활동은, 시간 날 때 하면 되고, 너무 재미있으면, 시간을 내서 하게 된다. 가장 시간이 여유로운 휴가지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하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다.




 내일은 새벽에 달리기를 할 것이다. 달리기가 끝나면, 스쿠터 택시를 타고, 미리 알아봐 둔 헬스장에 갈 것이다. 새로운 코스에서 달릴 것을 생각하면 설레고, 한국에선 꽤 비싼 역도 전용 원판을 사용하는 멋진 헬스장에서 운동할 생각을 하면 더 설렌다. 의무감 같은 것은 없다. 내겐 이미 유적 하나 돌아보는 것보다, 앞으로 평생 다시 뛰어볼 수 있을지 모르는 곳에서 달려보는 것이 더 멋진 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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