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상기 환자 "씹을 때마다 시큰거려요"라는 주소로 내원하셨습니다. 검사 결과 bite(+)로 크랙 의심됩니다.
고진 선처 바랍니다.
원인을 모르겠어요, 정밀진단을 위해 대학병원 방문 한번 해보세요.
하면 좋겠지만 왜 그런지 알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치료방법과 예후가 좋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원인이 뭔지 알아봅시다.
- 환자분 최근에 단단한 거 씹으셨어요?
- 아니
- 그럼 평소에 이갈이 하시거나 이 앙무는 습관 있으세요?
- 으으응
- 오징어, 깍두기랑 김치 즐겨 드세요?
- 그렇지! 한국인이니까!
- 오징어는 당연하고, 깍두기랑 김치도 딱딱한 음식입니다. 그리고 환자분 볼 쪽에 보이는 흰색 선 보이시죠? 그건 앙 물어서 볼이 씹힌 자국입니다. 이갈이도 있으신 것 같네요.
원인을 알 것 같아요. 그게 원인이란 걸 본인이 인정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혼내는 것도 거짓말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 의사면허 있고 간호사나 아가씨 아니고요. 네? 김치랑 깍두기가 왜 딱딱한 음식이냐고요? 그러게요. 두부보단 딱딱하지 않나요? 아 깍두기는 씹어먹어야 제맛이라고요? 저도 섞박지 좋아합니다. 깍두기 때문에 그런 거면 한국사람들 다 금 가지 않겠냐고요? 짜증 내지 마시고요 실제로 한국인들의 식습관이 원인인지 유달리 금이 가신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나 4-50대의 남성분들은 어금니가 갈리거나 깨져서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아 환자분 치아는 다 멀쩡하시다고요? 아닙니다. 멀쩡하지 않습니다.
치과의사의 업무 중에 구강 관련 지식 교육이 있긴 한데, 설득의 심리학을 덜 읽어서 그런가 환자분이 제 말을 믿지 않네요.
당신의 치아는 멀쩡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반건조 오징어도 당연히 안됩니다.
아가씨 아니에요 원장이에요.
퇴근하고 싶어요.
학교에 백발의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그것도 단발머리.
다른 병원에 불만을 가지셨는지 쒸익쒸익대며 체어에 앉으시던 환자분도 교수님의 머리카 아니 인자한 얼굴을 보면 눈에서 존경을 쏟아냅니다. 환자분이 다른 병원에서 겪었던 일과 통증과 스트레스와 그간 드신 약들을 다 설명하십니다. 그리고 화룡정점으로 나를 봐준 의사는 돌팔이인 게 틀림없다! 신뢰를 못하겠다! 하십니다. 교수님은 가만히 들으시다가 허허- 웃으시면서 "그럴 수 있습니다. 치료받고 아플 수 있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하십니다.
아- 그렇습니까?
환자분의 갑작스러운 깨달음. 그리고 안정.
가바펜틴이고 휴로펜정이고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의 말 한마디가 바로 만병통치약이고 마약성 진통제입니다.
분명히 나도 똑같은 말을 했는데
알아주질 않네요.
네 환자분? 제가 섹시하니까 환자분이랑 여름휴가를 같이 가자고요? 칭찬이라고요? 아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교수님은 환자가 여름휴가 같이 가자한 적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