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당 Apr 01. 2022

의사, 휴직하겠습니다

환자 리뷰는 9시 20분부터, 진료 시작은 9시 40분부터, 진료 마감은 6시 반.

남보다 적게 일하고 남보다 많이 번다. 

괘씸한 기득권층이고 비급여 진료로 불쌍한 아픈 환자의 돈을 탐하는 과잉진료 비양심 의료인으로 불린다.

다른 병원보다 비싸면 호구 잡는다 하고, 충치가 더 많다 그러면 과잉진료라 한다. "다른 치과는 다르게 말하던데?" 주로 20-30대 환자분들이 눈빛을 야리고 간다. 그리고 환자의 감정이 담긴 평가는 고스란히 네이버 리뷰 별점으로 남는다. 


저 많은 별들은 내 실력에 대한 평가일까, 환자의 이해도에 대한 평가일까. 




누군가 단톡방에 유튜브 영상을 올렸다. 아기가 경련이 일어나 응급실에 갔는데 다 처치하고 나서 보니 입 안에 파스가 있었다. 아이는 결국 장애를 갖게 되었다는 영상이었다. 의사가 입안을 한 번만 더 보고 파스를 뺐더라면 아이는 장애를 안 갖게 되지 않았을까? 하며 의사 실력 없다는 댓글이 가득했다. 그랬던 것 같다. 너무 먼 옛날의 기억이다. 




언젠가부터 출근하는 길에 버스에 치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럼 두 번 다시 출근할 일이 없을 텐데. 출근하고픈 사람이 어디 있겠냐 마는. 버스정류장 근처의 아파트 공사장 근처에 서있으면서 뭐 하나라도 내 머리에 떨어졌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바람이 시원했지만 숨 쉬고 싶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없었다. 길거리에 웃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났다. 쟤들이 불행하게 해 주세요- 하고 누군가에게 빌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창문을 열었다. 퇴근 중인 차들과 흔들리는 먼 불빛들을 보며 이 창문을 열고 몸을 기울여서 떨어질까 고민했다.


언젠가부터 환자의 아프다는 말이 "너 면허 있어요?"라는 컴플레인으로 느껴졌다. 누워서 얼굴에 덮인 소공포를 조정하는 모습도 "니가 맘에 안 든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진료 후 들려오는 피드백이 내 욕인 거 같았고 누군가는 소리를 지르면서 원장실로 삿대질하며 들어올 것 같았다. 나는 완벽하게 하려고 하는데. 논문을 읽고 교과서를 읽고 세미나를 들어도 "아파요"라는 말에 가슴이 조이지 않는 날은 없었다. 


그래서 그만뒀다.


누군가는 포시럽다 하더라. 복에 겨워서 돈 잘 버는 직업을 관두고 백수질 한다고. 남들은 다 참으면서 일하는데 너는 왜 참지 못하고 나약하게 그만두냐고. 남들 힘들게 돈 버는데 너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참는다고 대가리에서 세로토닌이 나오는 게 아니더라.

참는다고 뭐가 해결되는 게 아니더라.


"엄마, 나 매일 아침 일어나면 죽고 싶어."


이 말 하기가 어찌나 어렵던지. 


"그래? 그럼 쉬어. 그렇지만 우울증 증상 있는 건 비밀로 해. 우울증 있는 의사한테 누가 가고 싶어 하니."

그런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닌데. 틀린 말은 아닌 걸 아는데. 

괜히 말했나


Photo by Julie Tupas on Unsplash


집으로 돌아오는 밤, 고속도로에서 창문을 살짝 열고 시티팝 메들리를 들으며 돌아왔다. 과속은 무서워서 규정속도를 지키며 왔다. 우습다. 1차선에서 원 없이 달리는 사람도 있고 옆에서 느긋히 가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가끔은 지나가는 풍경도 쳐다봐야 하고, 저 달이 나를 쫓아오는 건지도 생각해 봐야 하고, 내가 오늘 하루 나에게 친절했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오늘 밤, 바람은 벌써 여름 향이 나고, 놀이터엔 벚꽃이 가득하다. 하늘은 높고 땀은 적당히 난다.


작가의 이전글 사주는 통계학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