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성 난소 증후군의 비애, 그럴 거면 개나 키워!
2018년에 마지막 인공수정을 실패로 끝내고 난 후, 나는 3년 만에 고국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당시에 내 몸무게가 상당했다는 것인데, 캐나다에서야 내가 뚱뚱한지도 모르고 지냈지만, 나는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모일 정도로 뚱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급박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다이어트에 도전해본 많은 여성들이 모두 공감하겠지만, 몸무게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운동이 아닌 식단이며, 약 100일 안에 10킬로 이상을 감량하는 게 목표였던 나 또한 운동보다는 식단에 집중하여 목표 체중을 맞춰 한국에 다녀왔다. 그래 봤자 내가 2012년에 한국에서 떠나올 때보다는 5킬로그램 정도가 더 찐 상태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2018년에 10킬로 감량에 성공하고 2019년에 홀로 한국에 재방문을 할 때는 이미 요요현상이 와서 추가로 5~7 킬로그램 정도가 도로 돌아와 있었다. 문제는 이 당시에는 내가 그렇게 도로 살이 올라왔다는 것을 딱히 느끼지 못한 채 한국에 갔다는 점이다. 게다가 한국에 도착하고 그리웠던 고국의 음식을 맛보면서 몸무게가 급격히 도로 올라오고 있었는데 당시의 나는 2018년 감량 성공에 아직 살짝 취해있었다. 친구들과 친척들을 신나게 만나며 맛있는 것도 많이 먹던 어느 날, 셋째를 임신한, 애국자 사촌언니와 함께 차를 한잔 마시면서 난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지리멸렬했던 2016년~2018년에 아직도 살짝 지쳐있기도 했고, 이제 막 다시 저축을 하기 시작하는 입장에서 시험관 비용이 감당이 되지 않아 그냥 애기 생각이 없다고, 생기면 생기는 거지라고 응수했다. 그렇지만 사촌언니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40대 언니가 시험관으로 최근 출산을 했다며, 강남의 한 유명한 산부인과를 추천해주었다.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출국 2일 전에 강남의 한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예약을 하지 못하고 가서 잠시 대기를 하다가 시간이 빈다는 한 남자 선생님에게 배정되어 상담을 받게 되었다. 미리 작성한 설문지에 기존의 난임 경험을 상세히 적었다. 개인적으로 캐나다에서 몇 번이나 난임 검사를 하면서 담당의사에게 "혹시 내가 다낭성 난소 증후군은 아닐까?"라고 물을 때마다 의사가 아니라고 대답을 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을 확인해보고픈 마음은 있었다. 하필 그때는 내가 거의 두어 달간 생리를 하지 않았을 때이기도 했다.
약간 깐깐해 보이는 남자 선생님이 들어와, 상담을 시작했다. 솔직히 초반의 상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3년이 넘게 지난 지금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내가 평생 잊지 못할 그의 한마디만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고, 나는 아마 그 말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는 것만 안다. 한참 내 상태에 대해 설명하는데 의사 선생님이 거의 약간 화가 나는듯하다는 투로 내게 직설적으로 말했다.
"다낭성이든 아니든, 엄마가 뚱뚱하면 엄마한테도 애한테도 좋은 게 못 되는 법이야! 엄마가 그렇게 뚱뚱해서 애를 낳으면 애한테도 못할 짓이지! 그럴 거면 개나 키워!"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채 뇌에서 정리도 되기 전에, "초음파 보고가. 어차피 비싸지도 않아' 라며 의사는 나를 갑자기 탈의시켰고, 난소를 체크했다. 그리고 "다낭성 맞네. 생리 두 달간 안 했다고 하는데 조만간 할 테니 딱히 약을 쓸 필요는 없겠어. 진단서 떼 줄 테니 캐나다 가서도 다낭성이라고 하고 관리받아. 살 빼고" 그렇게 나는 방에서 쫓겨났다. 여전히 방금 내가 들은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 의심하면서 말이다. 내가 캐나다에 너무 익숙해진 것일까? 물론 당시의 나는 비만에 가까운 과체중이었지만, 아무도 나에게 엄마가 되는 것이 욕심이라고 한 사람은 없었다.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날씬한 여성들을 바라보며 내가 가진 '임신'이라는 목표가 그렇게 큰 욕심인지 의문에 빠져들었을 뿐이다.
그런 뒤 마침 때맞춰 한국에 온 김에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도 받았다. 당연히 체질량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았다. 감량이 권고되었고, 식단표가 제공되었다. 그 밖에도 많은 수치들이 나와있기에, 나는 캐나다에 돌아와 그 리포트를 들고 내 패밀리 닥터를 만나게 되었다. 패밀리 닥터에게 나에게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 있었다는 사실을 결론적으로 알리고, 호르몬 조절과 다이어트를 위해 노력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의사가 그러면 임신하는 게 아이에게 오히려 해가 된다고, 개나 키우란 소리를 들었다고, 내가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냐고 질문했다. 내 패밀리 닥터는 그 얘기를 듣더니 너무나도 깜짝 놀라서 어떻게 의사가 그렇게 무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냐며, 몸무게를 줄이는 것이 도움은 될 테지만, 다낭성 난소 증후군의 예후 자체가 살이 쉽게 찌는 거라고, 호르몬상 살을 쉽게 빼기 어렵고 찌는 건 쉬운 몸인 건데, 그걸 도와줄 생각을 해야 한다며 오히려 나 대신 화를 내주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그제야 내가 만났던 의사가 환자에게 막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패밀리 닥터는 자신이 난임 전문의는 아니지만 내 상황에 대해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식단 조절보다는 운동을 권해주었다. 어차피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 있다면 내가 먹는 양에 비해 살이 쉽게 찌는 체질일 테니, 차라리 운동을 해서 근육과 기초체력, 기초대사량을 올리는 것이 식단만 해서 하는 것보다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따듯한 말을 잊지 않았다.
"단지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게 꼭 난임의 절대적인 원인일 수는 없어요. 그것이 개중의 하나의 문제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걸 찾는 걸 돕는 게 우리 의사들입니다. 내가 당신을 도울 수 있게 해 주세요" 아, 나는 내 패밀리 닥터가 너무 좋다. 그녀가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의 든든한 의사라는 점도 벌써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