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2
연휴 동안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뱃가죽 아래에 축구공 하나만큼의 살(과 죄책감)이 빵빵하게 들어찼다.
산책을 한 번 하는 정도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수준은 넘어섰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나만 이런 건 아닐 거라 믿는다.
그런데 산책이란 놈은 참 교활하다.
몸을 움직이다 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혈액순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인지, 산책 중에는 머리가 평소보다 잘 돌아간다. 겨드랑이 림프선쯤에 쌓여 뭉쳐 있던 생각들이 혈류를 타고 뇌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게 정리되지 않은 채로 어딘가에 처박혀 있던 생각들이 한 데로 모여 선명한 형태를 이룸으로써 하나의 통찰을 주는데, 간단하게 정리하면 그냥 산책을 할 때마다 깨달음 같은 것을 얻는다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데 별것처럼 느껴지는 깨달음이다.
생각해 보면 이건 누군가의 교활한 술수 같다.
종이 울리면 보상이 나올 거라 기대하며 자동으로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 씨의 개처럼, 산책을 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해서 나중에는 산책을 하지 않으면 몸이 간질간질해지도록 나를 길들이려는 계략인 것이다.
그래서 이득을 얻는 것이 누구냐 묻는다면 아마도 나겠지만, 호락호락 넘어갈 순 없다. 아무리 산책이 즐거워도 너무 자주 하지는 않으려고 자제한다. 매일 하면 산책이 주는 깨달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될지도 모르니까. (갑자기 떠오르는 상식 하나. 일본어로 '감사함'을 의미하는 '아리가따이'라는 말은 직역하면 '있기 힘든 일, 드문 일'이라는 뜻이다.)
하여튼 그래서 오늘 산책에서 얻은 깨달음이 무엇인가 하면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이것이다.
삶이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것.
이 깨달음의 바탕에는 유튜브에서 본 유명인의 브이로그가 있다.
모 유명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몇 년 전 소속사 채널을 통해 올린 영상인데, 내용은 별것 없었다.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며 음악을 듣다가 자신이 나온 영상을 모니터링하고, 앱을 통해 저녁 식사 거리를 주문하고, 다른 멤버와 같이 밥을 먹고, 침구를 청소하고, 샤워하고, 피부관리를 하고, 게임을 하고, 공식 카페에 팬이 올린 글을 읽고, 그 글에 답하고, 셀카를 올리고, 다른 멤버에게 전화를 걸고, 핸드폰을 만지다가 얼굴에 떨어뜨려서 아파하고. 스케줄이 너무 바쁜 날에는 곧바로 잠들기도 하고.
이렇게 나열해 놓으면 이게 뭔가 싶을 수도 있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얼굴만으로도 이미 대유잼이니까.
하지만 얼굴을 제외하면 영상은 딱히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다음날 일정을 확인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한 뒤 알차게 여가 시간을 보낸 다음 잠에 드는 모습은 정말로 평범한 직업인의 삶처럼 느껴졌다.
'당연히 유명인도 평범한 인간이지, 대체 무슨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거냐'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나는 올해로 서른셋이 되었지만, 며칠 전만 해도 좋아하는 만화 작가님을 만나서 사인을 받은 게 너무 신이 나서 현생 따위 갖다 버리고 작가님의 도비 혹은 발닦개가 되는 방법이 없을까 진지하게 생각하다 우울해진 인간이니까.
아무튼 아무리 유명하고 대단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다음 날의 일정에 따라 몇 시에 일어날지를 계산하고,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남은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 바쁜 일상 사이를 그렇게 사소한 것들로 채워가며 하루하루를 버티듯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새삼스러웠다.
그런데 한편으론 뭔가 허무했다.
살기 위한 일(먹고, 싸고, 자고, 씻고 등)과 살기 위해 돈을 버는 일 외에는 죄다 '그 외'로 묶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왠지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외'라는 건 대개 별것 아닌 것을 의미하는데, 내가 사랑하는 것은 모조리 '그 외'라는 범주에 속하니까.
작년 연말까지 나는 '그 외'에 푹 빠져 살고 있었다. 심심함 따위는 느낄 새가 없었다. 누군가가 시간을 뭉텅뭉텅 썰어 그중 가장 큰 덩어리를 훔쳐가기라도 한 듯이 정신을 차리고 보면 하루가 지나 있었다. 매일이 보람찼다. 돌이켜보면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졸업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그동안 외면하고 있던 현실이 바싹 다가왔다. 이 현실이라는 놈은 지금도 뻔뻔하게 정수리 바로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냅다 머리를 박아서 코피라도 흘리게 하고 싶은 걸 보면, 나는 아무래도 '현'이라는 글자와는 궁합이 맞지 않는 모양이다. 내 이름에도 '현'이 들어가는데..., 나나 현실이나 꼴 보기 싫은 건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꼭 찾아오는 놈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놈의 이름에도 '현'이 들어간다. 바로 현타라는 놈이다.
현타도 현실과 마찬가지로 생각할수록 참 재수 없는 놈이다.
무언가에 푹 빠져 있다가 현실로 한 발짝 내딛을라치면 귀신처럼 알고 찾아오는 놈이다.
현타의 감각을 물리적으로 표현해보자면 해수욕장에 갔을 때를 떠올리면 된다.
바다에 들어가서 신나게 수영할 때는 모르지만, 다 놀고 나서 뭍으로 올라오면 소금기와 모래 때문에 온몸이 끈적하고 까끌하고 찜찜해서 숙소에 돌아갈 때까지 어정쩡한 자세로 그 상태를 견뎌내야 하는 바로 그 감각 말이다.
그러니까 현타란,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마주해야 하는 책임으로 인한 착잡함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내가 지금 이걸 쓰고 있는 이유도 현타 때문이다. 산책하면서 느낀 현타.
산책의 교활함 때문에 나는 맑은 정신으로 현타를 맞이했다. 숙소로 돌아가면 평범한 직업인처럼 하루를 마감하는 아이돌의 노래를 들으면서 삶이란 별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노래를 듣다 보니 흥이 올라서 현타든 현실이든 '현' 자가 들어가는 이름을 가진 나든, 어찌 됐건 '현 뭐시기' 때문에 느끼는 착잡함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이겨내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관심이 없어졌다. 더 재밌는 게 나타났으니까.
내가 듣고 있던 노래의 뮤직비디오에는 우주를 달리는 열차가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마침 그때 내 머리 위로 지하철이 지나가면서 내 의식도 그쪽 세계로 넘어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느낀 '현실 따위 아무래도 좋다'는 기분은 현실 도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현' 자가 들어가는 다른 놈들과는 달리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나 즐겁고 달콤해서 언제까지나 놓고 싶지 않은 매력적인 아이.
하지만 현실 도피의 '도피'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니 '상상력'이라고 바꿔 부를 수도 있겠다.
어차피 본질은 같으니 상관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 이상을 그려보는 것, 그 너머의 세계를 그려보는 것이다.
현실을 견디기 위해서, 혹은 더 나은 현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저 현실을 직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까.
그래서 나는 산책하는 동안 맑아진 머리로 이렇게 생각했다.
'다 필요 없고 그냥 노래가 존나 좋네....'
그러니까 오늘 산책에서 얻은 두 번째 깨달음은 이것이다.
삶은 별것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감정들은 별것이라는 것.
현 자가 들어가는 이름을 가진 나는 오늘 하루 종일 먹고 뒹굴거리고 브이로그를 보고 산책을 하다가 현타를 느꼈지만 현실 도피를 통해 다시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었고 아마 내일도, 모레도 이렇게 살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