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은 Jul 15. 2022

헤어질 결심

붕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어떤 한 사건이 보다 많은 우연에 얽혀 있다면 그 사건에는 그만큼 중요하고 많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집시들이 커피잔 바닥에서 커피 가루 형상을 통해 의미를 읽듯이, 우리는 우연의 의미를 해독하려고 애쓴다.

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주술적 힘이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내가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기 바로 전날 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은 것은 어떤 우연이었을까?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 4중주.

제4악장의 서두에는 "Der schwergefasste Entschluss"라는 표제가 적혀있다.

"신중하게 내린 결정."

책이 내게 베토벤 최후의 악장을 선보였을 때, 나는 이것이 내 세계의 모티프가 될 것을 직감했다.



이 마지막 악장에는 ‘신중하게 내린 결정(Der Schwer gefasste Entschluss)’이라는 표제적 문구와 함께 ‘그래야만 할까?(Muss es sein)’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라는 말이 수수께끼처럼 적혀 있다.

‘그래야만 할까’라고 비올라와 첼로가 무겁게 물으면, ‘그래야만 한다’라고 바이올린이 부드럽게 대답하는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음악이 흘러간다. 처음에는 좀 머뭇거리다가 점점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의 강도가 세지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는 매우 강렬하고 확고하다.


그것이 베토벤이 음악으로 남겨놓은 ‘마지막 말’이다. 그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지금까지 이에 대한 수많은 해석이 나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다소 코믹한 해석을 예로 든다. 하지만 베토벤은 결코 이것의 주제를 언급한 적 없으며, 그렇기에 여러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티프가 되어 다양한 예술작품이 탄생했다.


나는 베토벤의 최후의 악장 주제를 '사랑'으로 해석한다.




사랑, 두 세계의 만남이라는 테마.

두 세계는 결코 공존할 수 없다. 상호 붕괴한다는 표현이 훨씬 어울린다.


작중 토마시는 자신의 원칙에 위배하며 그것이 사랑인지 정신병인지 분간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Es Muss Sein! 그래야만 한다!"를 되뇌며 테레사를 따라 취리히를 떠난 그는, 이내 의심이 들었다.

정말 그래야만 할까?


물리 실험 시간에 중학생은 과학적 과정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한 번밖에 살지 못하므로 체험을 가정해 확인해 볼 길이 없고, 따라서 자기감정에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도무지 비교할 길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밑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밑그림’이라는 용어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밑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초안, 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정신병인지 사랑인지 구분할 수 없는 그 감정이 만들어낸 결정은 과연, 정말 신중했을까? ‘결’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그렇기에 끝내 옳고 그름을 확인할 수 없는, 자기 파괴적인 붕괴를 경험하게 하는 ‘그것’은 정말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Es Muss Sein.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사랑에 관한 한,




“무너지고 깨어짐.”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붕괴’의 사전적 정의를 알게 되었다.

내가 이과이기 때문일까, 나는 이 단어의 두 번째 뜻이 눈에 밟힌다.


붕괴 : 불안정한 소립자가 스스로 분열하여 다른 종류의 소립자로 바뀌는 일.


진정 ‘사랑’이라는 테마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단어다.


붕괴는 양자 역학에 의한 확률적인 현상으로, 물질 안에 들어있는 어떤 원자가 붕괴할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연계의 모든 물질은 불안정한 상태(들뜬상태)에서 안정한 상태(바닥상태)로 가려는 성질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에너지의 손실은 결국 한 종류의 원자를 다른 종류의 원자로 변환시키기에 붕괴 전후는 구분된다.


사랑. 불안정한 두 세계가 우연히 만난 결과, 스스로 분열하고, 마침내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는 과정.




영화 <헤어질 결심>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그 줄거리를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그 바로 전 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었다는 기막힌 우연이 마침내 나를 미치게 할 뿐이다.


헤어질 결심.

그것은 ‘사랑할 결심’과 결코 다르지 않다.

‘결’을 볼 수 없는, 무용한 밑그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느 때보다 신중하게 내린 결정이며,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한없이 가벼운 우연이 만들어낸 숨 막히게 무거운 그것. 그 무거움 때문에 결국 붕괴할지언정, 나는 사랑을 갈망한다.


작가의 이전글 사유의 파편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