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 못 놀면서 도대체 누구랑 놀려고 하니?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

by 풍운아의 되새김질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 즉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세상에 아무것도 없이 태어나고, 결국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 채 떠난다는 뜻이다. 이 단순한 사실 속에는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태어나면서 우리는 육체와 자아라는 두 가지 존재를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그 자체로 이미 작은 우주를 이루고 있다. 고타마 싯타르타가 태어나서 일곱 걸음을 내딛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했던 것도, 결국 인간 존재의 독립성과 자기 자신과의 만남을 상징하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 현실에서 저런 행동을 한다면 누구에게나 다소 당황스럽고 소외될 수 있지만, 그 속에서도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가족과 함께하고, 성장하면서 친구를 만나며,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생활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사랑과 우정, 경쟁과 갈등을 경험하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모든 인간은 나라는 혼자에서 출발해 나라는 혼자로 돌아간다. 감정을 제외하고, 사실만 놓고 보면 인간은 태어나서도, 떠날 때도 스스로와 마주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아를 가진 '나'가 육체를 지닌 '나'를 잘 데리고 노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스스로를 즐겁게 하고, 자기 자신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법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내면의 안정과 행복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우울감, 불안, 분리불안, 공황장애 같은 정신적 문제가 나타나기 쉽다. 예를 들어,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끊임없이 외부 자극과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면, 작은 실패나 소외에도 쉽게 흔들리고 마음속 공허가 커진다. 스스로 즐길 줄 아는 능력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정신건강의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는다. 친구와 웃고, 동료와 경쟁하며, 가족과 하루를 보내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 곁에 누군가가 있기 전에 먼저 내 안에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과 관계에서 행복과 안정감을 기대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탄탄해야 한다.

혼자 있을 때의 시간은 외로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성장시키는 기회다. 거울을 보고 자신의 얼굴을 읽고, 혼자 웃고 울면서도 충분히 충만함을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세상은 언제나 복잡하고, 인간관계는 예측할 수 없는 순간들로 가득하지만,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돌볼 줄 아는 사람만이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

자아와 육체가 서로 즐겁게 놀 줄 아는 경험은 마음을 단단하게 하고, 외부 조건에 휘둘리지 않게 한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안정적이라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건강한 경계와 만족을 유지할 수 있다. 반대로 자기 자신과 친밀하지 못하면, 외부 관계에서 오는 불안과 피로가 쌓이고, 내면은 쉽게 공허해진다.

결국 삶의 시작과 끝은 혼자지만, 그 길 위에서 스스로를 데리고 놀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소모와 혼란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점검하라는 신호일 뿐이다. 자기 자신과 즐겁게 놀 수 있는 능력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삶의 중심을 잡는 힘이며, 정신적 건강과 행복의 기반이다.

혼자 잘 놀 줄 아는 사람만이,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그 길을 두려움 없이,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다. 나를 알고, 나를 즐기고, 나와 친밀한 사람만이 세상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중심을 잡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결국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탄탄한 삶이 곧 행복한 삶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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