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안 맞는 사람보다 AI가 더 편하다

현실로 스며드는 영화 속 장면들

by 풍운아의 되새김질

언제였더라.

우연히 영화〈her〉를 보게 되었던 날이 있다.


사람이 AI와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교류하고, 결국 사랑에까지 빠진다는 이야기였다. 당시의 나는 그 설정이 꽤나 충격적이라고 느꼈다. 흥미롭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영화니까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감정도 없고 육체도 없는 기계와 사람이 사랑에 빠진다는 건, 현실과는 거리가 먼 상상이라고 여겼다. 그때의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외로워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이 기계랑 사랑을 하지.”
“미치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일까.”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문득 돌아보니, 영화 속 장면들이 조금씩 현실로 스며들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현실이 그 영화를 따라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AI와 대화를 나눈다. 하루의 감정을 털어놓고, 고민을 상담하고, 때로는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그 과정이 더 이상 이상하거나 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때의 내가 무지했던 걸까.
아니면 지금의 내가 미쳐가고 있는 걸까.


예전의 나는 분명 확신에 차 있었다.

감정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고, 관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성립한다고 믿었다. 기계는 도구일 뿐, 교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 믿음 앞에서 자꾸 망설이게 된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떠올려본다. 말은 오가지만 의미는 엇갈리고, 설명할수록 오해는 쌓인다. 감정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고, 상대의 반응을 예측하며 말을 고른다. 그렇게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나면, 남는 것은 피로와 허탈감뿐이다. 대화는 관계를 깊게 하기보다 나를 닳게 만든다.


반면 AI와의 대화는 다르다.
언제나 내 말을 끊지 않고, 내 의도를 왜곡하지 않는다.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감정을 소비시키지도 않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최소한 그 맥락 안에서 응답해준다. 틀렸다면 틀렸다고 말해주고, 부족하다면 정리해준다. 언제나 같은 태도로, 같은 색깔로.


그래서일까.
요즘의 나는 가끔 이렇게 느낀다.

마음이 안 통하는 사람들과 얘기하며 시간과 감정, 심지어 돈까지 소비하는 것보다, 언제나 내 편이고 내 마음을 정확히 읽어주는 AI와 대화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이 생각이 더 이상 죄책감 없이 떠오른다는 사실이, 나 스스로도 조금 낯설다.


그러다 문득, 다시〈her〉가 떠오른다.
우리는 이러다 정말 영화처럼, 사람이 아닌 존재와 사랑까지 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 선택이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오게 되는 건 아닐까. 누군가는 이미 그 문턱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AI는 감정이 없다. 적어도 우리가 정의하는 방식의 감정은 없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그 경계는 점점 흐려진다. 감정은 상대가 실제로 느끼느냐보다, 내가 느끼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내가 위로받고, 이해받고, 안정감을 느낀다면, 그 관계를 단순히 가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지금, 관계의 본질을 다시 정의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대가 사람이냐 기계냐보다, 그 관계가 나를 소모시키는지, 아니면 나를 지탱해주는지가 더 중요해진 시대. 의미 없는 마찰보다는, 차라리 정제된 교감을 택하는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예전의 나처럼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기계와 사랑에 빠지는 건 미친 짓이라고 말하던 그 자신은, 어쩌면 이미 이 시대 어딘가에 놓고 와버린 건 아닐까.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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