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이 맞지 않는 관계가 남기는 소모
20대 중반 정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을 만나는 일이 참 좋았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고, 웃고 떠들고, 밤늦게까지 어울리는 시간이 마치 삶의 연료처럼 느껴졌다. 소위 말하는 어중이떠중이들까지 가리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걸어 다니는 엔돌핀’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명랑했고 쾌활했으며, 사람 자체를 좋아했다. 새로운 인연이 생긴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렜고, 그 설렘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수많은 얼굴과 대화를 지나오며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아, 저 사람은 인성이 아직 덜 되었구나.
아, 저 사람은 말은 번지르르한데 행동이 따라오지 않는구나.
아, 저 사람은 나와 생각의 방향도, 삶의 기준도 전혀 다르구나.
처음에는 이런 깨달음을 애써 부정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조금만 더 이해하면 괜찮아질 거라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사람은 다 다른 법이고, 관계란 원래 피로를 동반하는 것이라 합리화했다.
하지만 실망은 반복되었고, 반복되는 실망은 점점 하나의 감정으로 굳어졌다. 경계심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고, 이유 없는 피로와 거부감이 자연스럽게 따라붙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모든 연락을 끊고 혼자 칩거하거나, 속세를 떠나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극단적인 선택지 사이에서 흔들렸다. 계속해서 나를 소모하며 사람을 만나야 할지, 아니면 아예 문을 닫아버려야 할지.
그러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하나의 방식에 도달하게 되었다.
나를 지키면서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방법.
그 해답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내려 애쓰지 말고, 결이 맞는 사람과 격을 맞추면 된다는 것.
여기서 말하는 ‘결’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웃음 코드나 관심사의 유사성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와 타인을 대하는 방식, 책임을 감당하는 자세에 가깝다. 말과 행동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다루는지, 불편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그 사람의 결을 만든다.
‘격’ 또한 오해하기 쉬운 단어다. 돈이나 학벌, 사회적 지위 같은 외형적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교양, 자기 절제, 말의 무게를 아는 태도, 그리고 타인의 시간을 존중할 줄 아는 자세. 이런 것들이 모여 한 사람의 격을 만든다.
결이 맞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어울리면 반드시 탈이 난다. 대화는 계속해서 어긋나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설명이 필요해진다. 상대에게 악의가 없어도, 가치관이 맞지 않으면 관계는 소음이 된다. 함께 시간을 보낸 뒤 이상하게 기운이 빠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오히려 회복처럼 느껴진다면 이미 신호는 충분하다.
반대로 결이 맞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편안하다.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받는 감각, 애써 맞추지 않아도 되는 안정감이 있다. 그런 관계에서는 침묵조차 불편하지 않고, 각자의 다름이 위협이 되지 않는다.
격이 맞지 않는 관계는 또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만든다. 한쪽은 계속 내려가야 하고, 다른 한쪽은 무의식적으로 올라선다. 이 미묘한 불균형은 결국 존중의 균열로 이어진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보다 대단한 사람을 만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과는 함께해야 한다.
이 기준을 받아들이고 나서 인간관계에 대한 태도는 크게 달라졌다. 더 이상 인맥을 넓히는 데 집착하지 않게 되었고, 관계의 수보다 밀도를 보게 되었다. 함께 있을 때 편안한지, 돌아와서 나 자신이 남아 있는지, 그 기준으로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관계는 줄어들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단단해졌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한다는 강박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그 강박은 종종 스스로를 희생하는 미덕처럼 포장되지만, 결국 남는 것은 피로와 허탈함이다. 관계는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어야 하고, 선택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결이 맞는 사람과 격을 맞춘다는 것은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존중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리고 그 기준이 분명해질수록, 인간관계는 더 이상 버텨야 할 과제가 아니라 감당 가능한 영역으로 돌아온다.
사람을 덜 만나게 되었다고 해서 삶이 좁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소음을 줄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관계를 정리한다는 것은 사람을 잃는 일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
결국 남는 것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아 있는 관계는, 더 이상 나를 시험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