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너무 늦은 후회

우리는 왜 살아 있을 때는 못 가고, 죽어서야 간다고 말할까

by 풍운아의 되새김질

사람들은 툭하면 바쁘다고 말한다.


도저히 상황이 안 된다고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말의 끝에는 거의 의례처럼 미안하다는 문장이 따라붙는다. 그 말들은 대개 사실이다. 삶은 늘 제 몫 이상의 무게를 요구하고, 우리는 그 무게를 핑계 삼아 하루를 건너뛴다.


그러나 묘하게도 장례식장 앞에서는 그 말들이 힘을 잃는다. 평소에는 그렇게 바쁘다던 사람들이 그곳에는 거의 빠짐없이 모인다. 시간은 만들어지고, 거리는 단축된다. 그 자리에 가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결론처럼 보인다. 삶이 허락하지 않던 여백이 죽음 앞에서는 갑자기 생겨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살아서 보는 일은 자주 미뤄지지만, 죽어서 보는 일은 거의 미뤄지지 않는다. 이 간극은 생각보다 깊고 오래 마음에 남는다.


살아 있는 사람은 늘 현재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존재를 당연하게 여긴다. 다음이 있을 것이라 믿고, 나중이라는 말을 남겨둔다.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루는 조용히 밀려나고, 오늘은 내일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다. 그러나 그렇게 쌓인 내일들은 결국 아무도 열어보지 않는 서랍이 된다.


죽음은 다르다. 죽음에는 다음이 없다. 죽음은 미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장례식장으로 간다. 그 자리가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모든 이유를 잠재운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못한 말들이 한꺼번에 떠오르고, 우리는 그 앞에서 비로소 고개를 숙인다.


장례식장에서는 늘 비슷한 문장들이 떠다닌다. 살아 있을 때 잘해줄 걸 그랬다는 말이다. 자주 보지 못한 시간이 아쉽다는 말이다. 그때 한 번 더 연락하지 못한 일이 마음에 남는다는 말이다. 그 문장들은 너무 자주 반복되어서, 어느 순간 개인의 후회가 아니라 집단의 언어가 된다.


살아서 본다는 것은 가능성의 상태이다. 말이 오갈 수 있고, 오해가 풀릴 수 있으며, 상처가 남아도 회복될 여지가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관계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반면 죽어서 본다는 것은 모든 문장이 끝난 뒤의 페이지를 넘기는 일이다. 더 이상 고칠 수 없고, 덧붙일 수 없으며, 오직 읽을 수만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살아 있는 관계보다 끝난 관계 앞에서 더 성실해진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나중이라는 말을 남겨두고, 죽은 사람 앞에서는 그때라는 시간을 되짚는다. 이 모순은 아직 가능하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가능성은 사람을 안심시키고, 안심은 결정을 늦춘다.


살아 있는 사람은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언제든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고, 언제든 연락할 수 있을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 존재를 삶의 배경처럼 취급한다. 늘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 풍경처럼 대한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확정된다. 그 확정성은 사람을 정직하게 만든다.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변명할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앞에서야 비로소 최선을 다한 척을 한다. 그 척은 때로는 진심이지만, 동시에 너무 늦은 진심이다.


장례식장에 가는 일은 고인을 위한 예의처럼 보이지만, 실은 남은 사람을 위한 의식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고인을 보내며 스스로를 달랜다. 마지막 인사는 했다고 말하며, 마음속의 부채를 계산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오늘을 살아갈 명분을 얻는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는 늘 무언가가 남는다. 말로 묻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닿는 감정이다. 살아 있을 때 내내 미뤄두었던 시간들과, 그때마다 꺼내 들었던 바쁨과 상황이라는 말들이다.


그것들은 곧 일상 속에 잠기고, 우리는 다시 익숙한 선택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또 다른 장례식장에서, 이미 들어본 문장들을 다시 입에 올린다.


다음에 바쁘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미루게 될 때, 한 번쯤은 떠올려보기를 바란다. 우리가 결국 어떤 일이 있어도 가게 될 그 장소를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 가기 전에, 지금 갈 수 있는 자리가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를 바란다.


살아서 보는 얼굴은 장례식장에서 보는 얼굴과 전혀 다르다. 그 차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오늘의 선택은 이전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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