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했던 것들이 예의가 되어버린 시대
이 말을 부정하려고 애써본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굳이 그러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었고, 기준이 달라졌고, 나는 그 변화의 속도에 완전히 올라타지 못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살아온 감각과 정서를 전부 틀렸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나는 촌놈으로 자랐다.
도와주는 것이 특별한 선행이 아니라, 그냥 당연한 일이던 환경에서 컸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옆집 할머니, 이웃집 할아버지까지 모두가 서로를 알고 있었고, 서로의 사정을 어느 정도는 짐작하며 살았다. 누군가 리어카에 짐을 한가득 싣고 오르막길을 끙끙대며 올라오면, 말없이 뒤로 가서 밀어주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비료 포대를 옮기다 힘들어 보이면 이유를 묻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감사 인사를 듣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누가 시켜서도 아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지는 쪽에 가까웠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나는 지금도 ‘돈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 이전의 태도를 중요하게 본다. 역할이 주어졌다면, 최소한의 성의는 따라야 한다는 감각. 그것은 노동 윤리라기보다는 사람으로서의 기본에 가깝다.
그래서 요즘 풍경이 종종 낯설다.
편의점에서 손님이 들어오든 말든, 계산대에 서 있으면서도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 알바생을 볼 때면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돈을 받고 일을 하고 있다면, 그 공간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인사는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나는 곧바로 꼰대가 된다.
나는 그런 장면을 그냥 넘기지 못한다.
괜히 한마디 하게 되고, 반응이 없으면 감정이 상한다. 그러다 보면 말이 거칠어질 때도 있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분명히 피곤한 인간이다. 세상 모든 불친절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 장면이 눈에 들어오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두고 오지랖이라고 말한다.
괜히 나서서 문제를 만들고,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한다고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세상을 인기 얻으려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좋게 보이기 위해 내 기준을 접어야 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치는 쪽이 더 나 자신에게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결국 이 모든 생각은 가정교육이라는 단어로 모이게 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 무엇을 당연한 것으로 보여주며 자라게 했는지. 인사는 왜 해야 하는지, 일이라는 것이 단순히 돈을 받는 행위인지, 아니면 누군가와 약속한 역할인지. 그런 것들은 학교에서 배우기 이전에 집에서 보고 느끼는 것이다.
물론 모든 젊은 세대를 하나로 묶어 비난할 수는 없다. 성실한 사람도 많고, 예의 바른 사람도 많다. 다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기준이 지금은 선택 사항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변화가 늘 반갑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요즘은 많은 것들이 ‘시대의 흐름’이라는 말로 정리된다.
불편함도, 무례함도, 책임 회피도 그 안에 섞여 흘러간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강조되면서, 타인을 배려해야 할 이유는 점점 희미해진다. 그 흐름 자체를 전부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안에서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 힘들어 보이면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사를 받지 않아도 인사를 해야 하고, 맡은 역할이 있다면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효율적이어서도 아니고,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야만 해서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살아야 내가 나로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시대에 뒤처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쓸데없이 예민하고, 피곤한 인간일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내가 자라온 방식과, 그 안에서 몸에 밴 감각을 전부 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 감각 덕분에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고, 그 기준 덕분에 최소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꼰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 기준 없이 흐르는 사람보다는, 욕을 먹더라도 자기 기준을 붙들고 사는 쪽을 택하겠다. 시대가 변해도,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기본까지 변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믿으면서.
그 믿음 하나쯤은, 아직 놓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