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쌍바 기역자로 꺾이는 인생

생각과는 다르게 어긋나던 순간들

by 풍운아의 되새김질

옛부터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 말이 있다.


작은 것 하나라도 혼자 독차지하지 말고 같이 나누며 살라는 뜻이다.


이 말은 교과서에서 배운 윤리 문장이기 이전에, 어릴 적 우리의 실제 생활에 더 가까웠다. 어릴 때는 아이스크림도 늘 같이 나눠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 문화다.


각자 하나씩 사 먹을 수 있는데도 괜히 “한 입만”을 외치며 서로의 아이스크림에 입을 댔다.


물론 그 ‘한 입만’에는 늘 함정이 있었다.


정말 한 입만 먹는 친구도 있었지만, 한 입을 먹긴 먹었는데 남은 게 한 입밖에 안 되게 만드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 친구를 두고 우리는 “야, 그게 한 입이냐”라며 투덜댔고, 그래도 다음 날이면 또 같이 나눠 먹었다.


그 시절 우리가 유난히 많이 먹던 아이스크림 중에 쌍쌍바가 있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계실거라고 생각한다.


두 개가 붙어 있어서 나눠 먹기 딱 좋아 보이는 아이스크림.
포장지만 보면 세상 공정한 분배가 약속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막상 쪼개 보면 늘 문제가 생겼다.


국민학교 5학년이었는지,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글짓기를 하던 날이 있었다.
그날의 주제는 자유주제였다. 정말 아무거나 적어도 되는 시간이었다.


그때 한 친구가 쓴 시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내용 때문이 아니라, 제목 때문이다.


쌍쌍바 기억자로 꺾이는 인생.


그 친구는 이렇게 썼다.
친구와 나눠 먹으려고 쌍쌍바를 쪼개는데 왜 늘 비율이 똑같이 나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분명 가운데로 갈라야 할 것 같은데 끝에 가서는 꼭 한쪽이 더 커지고, 다른 한쪽은 애매하게 작아진다고.

그 모양이 마치 기역자처럼 꺾여 보인다고 했다.


어릴 때 나는 그게 그렇게 웃겼다.
아이스크림 하나 제대로 못 나누는 이야기를 인생에 비유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어릴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인생이라는 게 늘 정중앙으로 깔끔하게 갈라지지 않는다는 걸. 공평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막상 결과를 보면 누군가는 더 가져가고, 누군가는 덜 가져간다는 걸.


어릴 때 그런 감각을 가졌던 그 친구아말로 지금 작가나 시인이 되었어야 했는데, 연락이 끊겨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가 없다. 갑자기 이 글을 쓰다 보니 괜히 안부가 궁금해진다.


살다 보면 정말 많은 것들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면접에서 떨어지는 일도 있고,
별 기대 없이 봤는데 왜인지 모르게 합격하는 일도 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애써도 마음이 닿지 않고,
대충 대했는데도 이상하게 오래 남는 관계도 있다.


돈도 그렇다.
아끼고 아껴도 왜 늘 빠듯한지 모르겠고,
별생각 없이 쓴 돈은 왜 그렇게 잘 나가는지 모르겠다.


타이밍도 늘 어긋난다.
이때다 싶어 용기 냈는데 상황이 안 맞고, 이건 아닌 것 같아 접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기회였던 적도 있다.


마치 쌍쌍바를 쪼개듯 분명 가운데를 노렸는데, 결과는 늘 기역자로 꺾인다.


어릴 때는 그게 많이 억울했다.
나만 손해 보는 것 같고, 왜 나는 늘 작은 쪽을 쥐게 되는지 괜히 세상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알게 된다.
그게 꼭 누군가의 잘못은 아니라는 걸.


애초에 인생은 정확히 반으로 나눠지도록 설계된 게 아니다.
기대만큼 가지 않는 날이 더 많고,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날은 오히려 드물다.


그래도 우리는 또 기대한다.
이번엔 잘 쪼개질 거라고.
이번엔 가운데로 딱 갈라질 거라고.


그리고 또 한 번 기역자로 꺾인 쌍쌍바를 들고 혼자 웃는다.

어쩌면 그래서 이 인생이 너무 쓰기만 한건 아닌지도 모르겠다. 완벽하게 나뉘지 않아서 덜 계산적이게 되고, 덜 냉정해질 수 있으니까.


요즘 나는 엉킨 실타래 같은 날들이 이어져도 괜히 마음을 급하게 먹지 않으려 한다. 지금은 꼬여 있어도 언젠가는 풀릴 거라는 기대를 조용히 품어 본다.


모든 게 내 뜻대로 흘러갔다면 아마 이렇게 이야기할 거리도 없었을 것이다. 쌍쌍바 하나에 인생을 떠올릴 여유도 없었을 테고.


오늘도 어딘가에서 또 다른 쌍쌍바가 기역자로 꺾이고 있을 것이다. 그걸 보며 누군가는 속상해하고, 누군가는 웃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다 그렇게 조금씩 삐뚤어진 조각을 들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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