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고 삼키는 사이에 흘러간 것들
밥을 먹으면서 휴대폰을 보는 일은 이제 너무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혼자 식사할 때는 물론이고,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어도 화면을 내려다보는 일이 낯설지 않다. 한 손에는 숟가락이 있고 다른 한 손에는 휴대폰이 있다. 화면을 넘기다 한 입을 먹고, 알림을 확인하다 다시 씹는다. 그렇게 식사는 흘러간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은 유난히 눈에 띄는 존재였다. '저 사람은 친구 하나 없나' 식당 한가운데 혼자 앉아 있으면 괜히 시선이 가던 시절이었다. 혼자 먹는 밥은 어쩐지 쓸쓸하고 어색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혼밥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일상이 되었다. 혼자 먹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럽다. 바쁜 일정 때문일 수도 있고,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과는 같다. 맞은편에 앉아 대화할 사람이 없는 식탁이 흔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휴대폰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예전에는 사람과 마주 앉아 나누던 시선과 말들이 이제는 화면 속으로 향한다. 누군가와 이야기하지 않으면 어색했던 침묵을 휴대폰이 채운다. 우리는 어느새 휴대폰을 밥자리의 파트너처럼 대하게 되었다.
혼자 밥을 먹으며 휴대폰을 보는 장면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국밥집에서도, 분식집에서도, 혼자 앉아 화면을 내려다보는 모습은 흔하다. 주문이 나오기 전까지 메시지를 확인하고, 음식이 나오면 영상을 틀어놓는다. 씹는 동안에는 짧은 글을 읽고, 삼키는 동안에는 화면을 넘긴다.
사람들은 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혼자 먹는 밥이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을 활용하는 셈이다. 밥만 먹고 있자니 허전하니, 휴대폰으로 그 공백을 채운다. 시간을 아끼고 있다는 착각은 이렇게 시작된다.
하지만 이 효율은 생각보다 허술하다. 인간의 뇌는 한 번에 한 가지에 집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밥을 먹는 동시에 영상을 보고 메시지를 읽으면,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이 아니라 집중을 계속 옮기고 있을 뿐이다. 그 사이에서 집중은 잘게 쪼개진다.
그래서 식사가 끝나고 나면 무엇을 먹었는지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밥 한 그릇을 다 비웠는데 잘 먹었다는 감각은 남지 않는다. 배는 부른데 만족감은 없다. 반대로 휴대폰으로 본 영상이나 글도 선명하게 남지 않는다. 우리는 한 그릇을 먹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 그릇만 먹은 셈이다.
이 현상은 혼밥이라는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맞은편에 사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속도가 조절된다. 대화의 리듬에 맞춰 먹고, 말을 멈추면 씹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혼자일 때는 그런 기준이 없다. 침묵을 견디기보다는 화면을 켠다. 식사는 점점 행위가 아니라 배경이 된다.
이렇게 쪼개진 시간은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 기억되지 않는 시간은 삶의 밀도를 만들지 못한다. 하루를 분주하게 보냈는데도 무엇을 했는지는 흐릿하다. 많은 일을 했다는 사실만 있고, 무엇을 느꼈는지는 남지 않는다.
우리는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집중이 분산된 시간은 대부분 허공으로 흩어진다. 바쁘게 살았다는 감각과 충만하게 살았다는 감각은 다르다.
밥을 먹는 시간조차 온전히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적인 행위마저 다른 자극과 나눠 써야 안심이 된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항상 다음 화면, 다음 알림, 다음 자극을 기다린다.
가끔은 휴대폰을 엎어두고 밥을 먹어볼 필요가 있다. 혼자여도 괜찮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고, 그저 먹는 데만 집중하는 시간이다. 처음에는 시간이 유난히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손이 허전하고 시선이 어색하다.
하지만 몇 분만 지나도 감각이 돌아온다. 음식의 온도와 질감이 느껴진다. 씹는 소리가 또렷해진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분명해진다. 그 짧은 시간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채운다.
그 단순한 선택이 흘려버린 시간을 되돌리고, 반 그릇씩 흩어 쓰던 시간을 다시 한 그릇으로 채우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