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날들
아군이 10명이면 적군도 10명이다.
이 문장은 싸움의 공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삶의 작동 방식에 가깝다. 누군가의 편에 선다는 것은 동시에 누군가의 반대편에 서는 일이다. 나는 그 사실을 오래도록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좋은 선택을 하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거라 믿었고, 진심을 다하면 오해는 생기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늘 다르게 흘러갔다. 내가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누군가는 박수를 쳤고, 같은 순간 누군가는 불편해했다. 나를 응원하는 시선이 늘어날수록,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눈빛도 함께 늘어났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되돌아봤다. 혹시 내가 과했는지, 조금만 더 무난했으면 이런 반응은 없었을지 고민했다.
말을 아끼면 갈등은 줄어든다. 침묵은 안전한 선택처럼 보인다. 아무 의견도 내지 않으면 누구와도 부딪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는다. 침묵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싫어하지 않는 대신, 아무도 나를 분명히 기억하지도 않는다. 나는 점점 흐릿해진다. 존재감은 줄어들고, 방향은 사라진다.
그래서 결국 다시 말하게 된다. 다시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반응은 갈린다. 어떤 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이는 고개를 돌린다. 모두에게 안전한 말은 대부분 아무 의미도 없다. 의미 있는 말은 언제나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 불편함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어딘가에 서 있다는 증거다.
이 구조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사람은 쉽게 지친다. 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겼는지 이유를 찾으려 들고, 왜 나를 오해하는지 끝없이 설명하려 든다. 그러나 모든 반응에는 답이 있지 않다. 누군가의 반대편에 서게 되는 이유는, 대부분 내 잘못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자리 때문이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과 가까워질수록, 다른 누군가와는 멀어진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온도로 다가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마음은 언제나 방향을 가진다. 한쪽으로 기울면, 다른 쪽은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관계는 오히려 더 어색해진다.
일도 다르지 않다. 잘해도 말이 나오고, 못해도 말이 나온다. 잘하면 시기와 의심이 따라오고, 못하면 무시와 냉소가 따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말은 줄어들지만, 대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결국 선택지는 분명하다. 흔들리더라도 움직일 것인가, 조용히 사라질 것인가다.
이제는 안다. 누군가의 반대에 부딪힌다는 것은 실패의 신호가 아니라, 선택의 흔적이다. 아무 편에도 서지 않았다면, 아무런 반응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모든 반감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에 가깝다.
문제는 시선이다. 어디를 바라보며 살아갈 것인가다. 나를 못마땅해하는 사람의 숫자를 세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든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마음을 쓰고, 그들의 평가를 곱씹느라 하루가 쉽게 소모된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나는 정작 중요한 사람들을 놓치고 있었다.
우리는 나를 믿어주는 몇 사람만 챙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준 사람, 내 선택을 존중해 준 사람, 조용히 곁에 남아준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빠듯하다. 그 관계를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마음과 책임을 요구한다.
그에 비하면,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모든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도 없고, 모든 시선에 반응할 이유도 없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훨씬 단순해진다.
그러니 괜히 그런 것으로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된다. 나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그들끼리의 세계에서 살게 두면 된다. 나는 내가 선택한 자리에서, 내 편이 되어준 사람들 곁에 서 있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바쁘고, 충분히 살아 있다.
아군이 10명이면 적군도 10명이다.
그러나 내가 끝까지 바라봐야 할 것은,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얼굴이 아니라 내 곁에 남아준 사람들의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