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왜 끝나지 않는가
이제는 이 산이 끝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여기까지 왔다. 숨이 가빠질 만큼 올라왔고, 더 이상 힘을 쥐어짤 여지도 없다고 느끼는 지점까지 도달했다. 이 정도면 이제 내려가도 된다고, 수고가 보상으로 바뀌는 구간에 들어설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산을 하나 넘자 그 뒤에 또 하나의 산이 서 있었다.
이번에는 진짜 마지막일 거라 여겼다. 이번만큼은 끝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조금 전 그 산을 넘고 나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또 다른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때 이런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산의 끝은 어디인가.
나는 왜 계속 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걷고 있었을까.
혹시 이 길에는 애초에 ‘마지막’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건 아닐까.
우리는 삶을 종종 통과해야 할 구조로 착각한다. 이 시기만 넘기면 다음 단계가 있고, 이 고비만 지나면 안정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지금의 고단함을 임시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오늘을 견디는 대신 내일로 미뤄 둔다.
하지만 현실은 그 믿음을 반복해서 무너뜨린다. 하나의 산은 언제나 또 다른 산의 시작일 뿐, 끝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끝이라고 부른 지점은 대부분 지쳐 있을 때 임의로 설정한 환상에 가깝다.
사람들은 말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맞는 말이라는 건 나도 알고있다. 하지만 그 말은 늘 숨이 가쁜 사람의 폐를 고려하지 않은 채 던져진다.
지금의 나는 즐길 수 없다. 이건 놀이가 아니고, 경험이라 부르기엔 너무 날것이며, 성장이라 부르기엔 지나치게 소모적이다. 이건 의미를 발견하기 이전의 시간이고, 정당화되기 전의 고통이다.
즐기지 못한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의미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상태에서 즐거워지기를 요구받는 일은, 고통 위에 또 하나의 폭력을 얹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다른 생각을 해본다.
산을 넘는다는 사고 자체가 혹시 잘못 설정된 것은 아닐까.
넘어야 할 대상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산은 곧바로 적이 된다. 정복해야 할 대상이 되고, 지금 이 위치는 언제나 미완성의 상태로 규정된다.
하지만 산과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이 지형은 더 이상 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내가 지금 존재하고 있는 자리일 뿐이다.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직 이 높이에 있는 것이고, 뒤처진 것이 아니라 지금 이 경사를 살아내고 있는 중일 뿐이다.
물론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언제 끝나느냐는 질문은 여전히 고개를 든다. 내가 도인이 아닌 이상, 삶을 그대로 긍정하는 경지에는 아직 멀었다.
그럼에도 “또 산이 있다”는 절망보다는 “아직 산 위에 있다”는 인식이 나를 조금 더 오래 붙들어 준다.
끝을 기대하지 않으면 배신당할 일도 줄어든다. 보상을 상정하지 않으면 지금의 고통을 거래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을 견뎌낸 내가 어제보다 나아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의 나를 불합격 처리하지는 않게 된다.
산은 여전히 내 앞에 있다. 그리고 아마 이 구조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산을 넘겠다는 의지 대신, 산과 함께 머무는 태도를 선택해 본다. 이것은 체념도 아니고 포기도 아니다. 현실을 정확히 보려는 시도에 가깝다.
오늘도 나는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이 삶의 지형 위에 분명히 존재했다.
나는 산을 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산과 함께 살고 있다.